[시론/안병준]북핵-FTA 선제적 대미외교를

  • 입력 2008년 11월 15일 02시 58분


버락 오바마 의원이 제44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국제정치의 새로운 도전이다. 이제 미국은 해외에서 다소 후퇴하면서 자국 이익의 우선순위에 따라 선택적으로 개입하는 대전략을 모색할 것이다. 우리는 이 변화된 상황에서 전통적 한미동맹을 당연시하지 말고 선제적 대미외교를 시도해야 한다. 마침 열리는 20개국 정상회의를 십분 활용해 이명박 대통령은 북핵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미 대선 기간에 오바마는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두 가지 입장을 천명했다. 그것은 북한 당국과 조건 없이 대화하겠다는 점과 현 상태의 FTA는 반대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호혜적 자유무역원칙은 옹호했다. 이는 한미 양국이 안보 및 경제이익을 공유하고 있으며 다만 실현방법에 이견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 미묘한 이견을 극복하는 데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이 대통령은 오바마 당선인과 만나야 한다. 미국은 우선 동맹국인 한국과 먼저 공조하고 북한이 6자회담에서 완전한 핵 검증을 수용하게 하는 원칙에 합의해야 한다. 이 결과 미-북 대화가 6자회담과 남북대화를 해치지 않고 오히려 이를 고무하는 방향으로 시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미 의회가 FTA를 비준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오바마 자신이 이 협정을 반대했고 상하 양원을 압도적으로 장악한 민주당도 강한 보호주의 성향을 보이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 측이 자동차 교역에 대해 미국의 관심을 불식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작년에 한국은 미국에 77만2487대의 한국차를 수출했고 6235대의 미국차를 수입했다고 한다. 도산 직전에 처한 자동차업계와 해고 위협을 받는 노동조합은 물론이고 의회도 현재의 경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다. 한국은 재협상을 수용하지 못하더라도 상용트럭 수입 등 보완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선에서 조지 W 부시 행정부, 현 미 의회 및 오바마 측근 간에 타협점을 찾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이를 성사시키려면 부시, 오바마, 펠로시 하원의장 간에 정치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부시는 잔여 임기 내에 한미 FTA를 비준하겠다고 이미 약속했다. 오바마와 펠로시에게도 부시 레임덕 기간에 이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임기 초년에 시도하는 방안보다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다. 이러한 취지에서 이 대통령은 부시, 오바마 및 펠로시와 접촉해서 이 방안을 추진해 봐야 한다. 비록 이것이 여의치 않게 되더라도 차후에 실현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처럼 선제적인 노력은 우리의 안보와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미국 국력이 쇠퇴하고 중국이 급부상하며 북한의 장래가 불확실해지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일은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미 국민에게 투영된 한국의 위상을 개선해야 한다. 예컨대 올해 촛불시위에서도 대다수 한국인은 미국 쇠고기를 반대했다기보다 안전하지 못한 쇠고기를 두려워했음을 알려야 한다. 한국은 오바마가 역설한 보편적 가치로서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실천하는 나라라는 사실을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

한편 우리는 1930년대 이후 가장 심각한 금융위기와 불황을 겪는 미국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은 국내의 재정적자를 충당하기 위해 해외에서 매일 20억 달러를 차입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여건에서 오바마 당선인은 대외관계에서 무임승차나 일방적인 혜택은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의회도 자유무역이 장기적으로 경제성장과 소득증대에 기여할지라도 당장 필요한 경기회복과 고용증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반대한다는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이런 상황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대미외교는 오바마 측근과의 인맥을 확대하는 수준을 넘어서 미국의 국내 정치, 특히 의회, 언론, 학계에서 북핵 폐기와 FTA 비준을 지지하는 세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무역협상은 외교관이 하지만 비준은 의회가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운을 좌우할 전략적인 외교에 실기하지 말아야 한다.

안병준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대한민국 학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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