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8년 11월 15일 02시 58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10년 전 외환위기 때처럼 또 한 번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세계적 금융위기가 실물경기의 침체로 번지면서 직장인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 월가에서는 내년에 7만 명이 일자리를 잃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단행될 것으로 추정되며 글로벌기업들의 대규모 감원 소식도 잇따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지, 직원을 줄인다면 어느 정도 줄여야 할지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메릴린치 등 직원교육 소홀히 한 기업
임직원 리더십 키우지 못해 끝내 몰락
연봉 동결하고 운영비용 줄이더라도
교육비 유지해야 호황기때 앞서나가
불황기는 조직 되돌아볼 절호의 기회
미래 대비 글로벌 인재 적극 영입해야”
세계적 인사관리(HR) 컨설팅회사인 헤이그룹의 연구개발(R&D)을 총괄하는 메리 폰테인 매클러랜드센터 소장은 7일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의 인터뷰에서 “상황이 어렵기는 경쟁사들도 마찬가지인 만큼 위기를 기회로 잘 활용하는 기업은 돌아올 호황기에 남보다 더 앞서 나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불황기일수록 직원들은 무기력하게 있기보다 상황을 빨리 극복하기 위해 회사에 기여하고 싶어 하는데, 이때 뛰어난 리더가 없다면 직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기업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며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불황기는 인재 확보의 적기
폰테인 소장은 “불황기야말로 조직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볼 기회”라고 강조하며 펩시코의 전 CEO인 웨인 캘러웨이 씨가 “불황기를 환영한다”고 말한 것을 예로 들었다. 호황기에는 기업들이 서로를 따라잡기 위해 기존의 의사결정을 검토할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리지만, 오히려 불황기에는 다시 한 번 회사의 운영 상태를 차분히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은 이를 통해 다가올 호황기에 대비해 회사의 사업들에 ‘선택과 집중’을 구사함으로써 운영전략을 확실히 정할 수 있다.
그는 “인력감축의 규모는 기업의 재무상태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부채가 많은 기업은 상당한 인력을 줄이고, 현금성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상대적으로 인력감축의 폭을 적게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와 더불어 폰테인 소장은 “‘전사 10% 인력 감축’과 같은 표어를 내걸고 무작정 인원을 줄이기보다는 기업이 향후 어떤 분야의 사업에 주력할지 판단해 불필요한 부서는 줄이고 미리 호황기에 필요한 인재를 확보해 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 기업들의 경우 글로벌경영을 지향하면서도 정작 다양한 문화를 아우를 수 있는 진정한 글로벌리더는 없다”며 “지금이야말로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리더를 적극 영입할 기회”라고 조언했다.
회사가 인력을 감축하면 남아 있는 직원들은 자신도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폰테인 소장은 “인력을 줄이는 것보다 회사의 생존자들(survivors)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게 더 어렵다”며 “이들에게 전보다 명확한 업무를 주면서 책임감을 심어주고, 수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회사의 경영 방향을 꾸준히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악의 해고 방법은 조금씩 여러 차례에 걸쳐 해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럴 경우 남은 직원들이 다음엔 자신의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업무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절약캠페인 직원 사기 꺾어
경기가 어려울수록 기업들은 당장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교육훈련비를 줄이기 쉽다. 이에 대해 폰테인 소장은 “불황기를 함께 헤쳐 나갈 인재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는 상당히 근시안적 사고”라며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글로벌기업들 중에는 경기가 불황일 때 전 직원의 연봉이나 성과급을 동결하는 한이 있더라도 교육훈련에는 꾸준히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기업의 다른 운영비용을 줄여서라도 교육훈련비를 전면적으로 줄이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불황기에 교육훈련비 삭감을 단행한 기업의 예로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에 매각된 메릴린치를 들었다.
1980년대에 메릴린치는 인재개발을 회사의 주요 가치로 표명하며 인재 교육기관인 메릴린치대학을 설립했으나 1986년 이 회사에 위기가 닥치자 메릴린치대학을 폐교하고 모든 인재관리 프로그램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직원들의 기대와 달리 그 후 메릴린치대학은 부활하지 않았다.
폰테인 소장은 “제대로된 교육 부족으로 리스크가 상당히 높은 거래를 해놓고도 리더에게 보고하지 않는 일까지 생길 정도로 메릴린치 임직원들의 리더십에 결함이 종종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과거에 두 회사의 HR부서에서 리더십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위해 헤이그룹에 컨설팅을 요청해왔으나 회장들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며 “당시 반대한 사람은 나중에 잘못된 경영으로 악명을 얻은 엔론의 켄 레이 전 회장과 AIG의 모리스 그린버그 전 회장이었다”고 귀띔했다.
경기가 불황이라고 해서 사내에서 대대적인 절약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환경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직원들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폰테인 소장은 1970년대 후반 미국의 석유회사인 모빌(현 엑손모빌)에서 근무하며 겪은 일화를 들려줬다. 당시 오일쇼크가 닥치면서 회사 상황이 어려워지자 모빌은 직원들이 점심에 먹는 샌드위치의 양을 한 개에서 절반으로 줄이고, 관리하는 데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사내의 화분을 몽땅 없애기로 했다. 당시 모빌 사장은 이 캠페인을 알리기 위해 전용 비행기를 타고 여러 지역의 지사들을 돌아다녔다. 그러자 직원들은 사장이 여러 지역을 도는 데 들어가는 기름값을 샌드위치와 화분의 개수로 환산하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직원들의 사기가 꺾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기업이 무작정 허리띠를 졸라매려 하면 적은 비용을 아끼려다 오히려 큰 것을 잃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을 범하기 쉽다는 것이다.
폰테인 소장은 “상부에서 캠페인을 정해 놓고 하달하기보다는 직원들이 비용 절감 아이디어를 스스로 찾아 실천하도록 하는 게 효과적”이라며 “단 직원들은 상부에서 물어보기 전에 먼저 나서서 이야기하지 않는 만큼 회사에서 이들과 수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 메리 폰테인 소장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UNC-채플힐) 경영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직행동학 전공으로 경영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듀크대 푸쿠아 경영대학원 교수를 거쳐 글로벌 HR 컨설팅기업인 헤이그룹에서 지난 20년간 포천 선정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리더십 개발, 인재 관리, 역량평가 관련 프로젝트를 이끌어 왔다. 현재 헤이그룹의 연구개발(R&D) 중심인 매클러랜드(McClelland)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 폰테인 소장이 본 오바마 리더십 ▼
“우리는 할수있다” 메시지로 타인 역량 북돋워
“전략적인 사고 경향 높아 경제위기 타개 희망적”
폰테인 소장은 경제적 혼란을 겪고 있는 미국을 이끌어갈 오바마 당선인의 리더십 역량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그는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당선 수락연설문과 취임연설문을 분석해 온 경력을 토대로 이번에 오바마 당선인의 수락연설문을 분석해 그의 리더십 스타일을 밝혔다. 대개 대통령 수락연설문과 취임연설문은 보좌진의 도움 없이 당선인 스스로 작성하므로 당선인 개인에 대한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폰테인 소장은 우선 인간의 모든 사회적 행동의 86%를 좌우한다는 3가지 사회적 동기에 대해 설명했다. △개인적으로 어떤 목표에 도달하기를 즐기는 ‘성취동기’ △가족이나 친구 등 지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친화동기’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싶어 하는 ‘권력동기’가 그것이다. 특히 권력동기는 자신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스스로 위대함을 느끼는 ‘개인화된 권력동기’와 상대방이 더 강인한 역량을 갖도록 도우려는 ‘사회화된 권력동기’로 나뉜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성취동기가 강한 편입니다. 대통령이 여러 국가와의 정상회의 참석차 출장을 가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보좌관은 회의에 앞서 브리핑을 해주겠다고 합니다. 이럴 때 부시 대통령은 회담 브리핑을 듣기보다 ‘달리기를 한번 하고 식사한 뒤 쉬고 싶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기록 갱신을 좋아하고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게 성취동기가 강한 사람들의 특징이지요. 이런 타입의 사람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자기개발에 집중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타인이 뭘 할 수 있는지보다는 자신의 성취에만 관심이 많습니다. 반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친화동기가 강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어느 나라의 정상들이 참석했는지, 그 나라들의 현안은 뭔지를 파악하는 편이었거든요.”
폰테인 소장은 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개인화된 권력동기와 사회화된 권력동기를 모두 갖고 있어 때로는 타인을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대하는 단점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도 그런 맥락에서 초래된 결과라는 것이다. 그는 “3가지 사회적 동기를 골고루 갖춘 유일한 인물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폰테인 소장은 “오바마 당선인은 상대적으로 친화동기는 적은 편”이라며 오바마 당선인이 두 딸에게 백악관에서 강아지를 기르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것을 예로 들었다. 그가 딸들에게 ‘너희들이 강아지를 받을 만한 행동을 했으니까 사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폰테인 소장은 “오바마 당선인은 거의 모든 연설에서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는 말을 자주 쓰고 청중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편”이라며 “그의 자서전을 보면 성장과정에서 사회화된 권력동기가 지속적으로 개발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회화된 권력동기가 강한 사람은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오바마 당선인의 리더십은 현재의 위기 상황을 전략적으로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