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상운]‘환급신청’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 입력 2008년 11월 12일 02시 56분


경기 파주시에 사는 김모(64) 씨는 최근 ‘학교용지부담금’을 환급받으러 시청에 갔다 온 뒤로 화병을 얻었다.

그는 2002년 아파트 분양권을 최초 분양자로부터 전매로 사면서 학교용지부담금 200여만 원을 납부했다. 납부영수증과 매매계약서를 꼼꼼히 챙겼지만, 시청 직원은 접수를 거부했다.

계약서에 ‘매수자가 부담금을 냈다’는 내용의 특약사항이 빠져 있어 김 씨가 실제로 부담금을 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시청 직원은 “최초 분양자로부터 ‘환급 양도서’를 받아와야 한다”고 했다. 김 씨는 어렵게 최초 분양자와 통화가 됐지만, 며칠 뒤 연락이 끊어졌다.

김 씨는 “당시엔 부담금 환급 얘기가 전혀 없어 계약서에 특약을 넣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청 측은 “부정 환급자를 막기 위해 교육과학기술부가 특약사항을 요구하라고 지방자치단체에 지시했다”며 “현재로서는 양측이 재판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울산 남구 S아파트에 사는 조모(38) 씨는 매매계약서상 특약은 용케 챙겼지만, 납부영수증을 사본만 갖고 있어 접수가 거부됐다. 구청 직원은 “최초 분양자로부터 영수증 원본을 받아오라”고 했지만 해당 주택은 3차례나 전매를 거친 상황이어서 최초 분양자를 알아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

최근 이들처럼 학교용지부담금을 납부하고도 환급받지 못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2005년 3월 “2000년부터 300가구 이상 공동주택 입주자에게 일괄적으로 학교용지부담금을 부과한 것은 합리적 근거 없는 차별”이라며 위헌 결정함에 따라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해 지난달 31일부터 부담금 환급을 시작했다. 환급 대상은 약 25만 명. 액수는 약 4611억 원으로 1인당 184만 원꼴이다.

그러나 전국의 자치단체 곳곳에서 서류 미비라는 이유로 접수가 거부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은 “부담금을 낸 매수자가 몇 년 동안 계약서와 영수증 원본을 보관하긴 사실상 힘들다”며 “더욱이 매매계약서에 특약까지 있어야 한다는 건 사실상 신청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몇 백만 원의 부담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한다면 헌법재판소가 지적한 ‘합리적 근거 없는 차별’이 다시금 반복되는 셈이다.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해 이자까지 쳐서 부담금을 환급해 주는 취지가 무엇인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김상운 사회부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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