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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27일 20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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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도 감동을 주는 청백리(淸白吏) 얘기의 한 토막이다. 황희는 끼니 걱정을 하는 백성을 생각해 집에서 개도 기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조선의 관리들이 모두 황희 같았던 것은 아니었다. 성호 이익(1681∼1763)은 그의 문집에서 “우리나라는 녹봉이 부족해 벼슬아치들이 녹봉만으로 먹고살 수가 없어서 부득이 법을 어기고 가렴(苛斂)을 한다”고 당시의 현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청백리와 오리(汚吏)의 차이는 가난의 고통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달려 있다. 개발시대엔 이 나라 공무원들도 자신의 부정과 비리를 곧잘 월급만으로 살기 힘들어 저지른 ‘생계형’으로 치부했으니까. 하지만 누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살기 어려웠던 게 공무원들뿐이었나. 부도덕한 공복(公僕)의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처우 좋아진 官吏들이 農民울려
요즘 공무원 처우는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과거엔 민간 기업보다 보수가 적었지만 이젠 차이가 거의 없다. 직장의 안정성이나 노후 연금 면에선 오히려 앞선다. 취업 준비생들에겐 공무원이 직업 선호도 1위다. 오죽하면 ‘공시족(公試族)’이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그렇다면 적어도 공직자들은 쌀 소득보전 직불금 부당 수령 같은 부정한 짓은 안 했어야 한다. 어떻게 공직자가 힘없고 가난한 농민의 가슴에 못을 박을 수 있는가.
자신들이 만든 법과 제도여서 누구보다 허점(虛點)을 잘 알아 그 틈을 노린 셈이니 ‘갈취형’ 비리라 할 만하다. 어디 그뿐인가. 쌀 직불금 제도가 도입된 때가 2005년이다. 양심적인 공직자가 몇 사람만 있었더라도 초기에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소신 있게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은폐한 의혹이 짙다. 위로는 대통령부터 아래로는 말단 실무자에 이르기까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쌀 직불금 사태는 이명박 정부엔 기회다. 환부를 잘만 도려내면 범법 불감증에 빠진 공직사회를 일신(一新)할 수 있다. 직불금 부당 수령 추정자 17만 명 중 공직자가 4만여 명이라고 하니 샅샅이 가려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공직자들부터 엄정히 다뤄야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원칙을 확고히 할 수 있다. 우리 정치는 어떤 당(黨)이든 집권만 하면 관료사회와 자신을 일체화(一體化)하는 경향이 유달리 강하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관리들을 감싸고, 관리들이 공격받으면 마치 자신이 당하는 것처럼 아파한다. 그래야 국정을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관료들에게 휘둘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고치고 바꿀 게 한두 군데가 아니다. 관련 법 중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은 당장 손을 봐야 한다. 감사원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다만 국회로 이관하는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 민원과 비리가 끊이지 않는 여의도 국회에 감사원의 회계감사 기능을 넘기는 데 대해서는 부정적인 헌법학자들이 더 많다. 각 부처와 지자체의 허울뿐인 감사관실도 이대로 나둬선 안 된다. 주위에서 그렇게 많은 동료 공직자들이 부당한 짓을 했는데도 몰랐는가, 아니면 알고서도 제 식구들이라고 감싼 것인가.
쌀 직불금, 관료 휘어잡을 好機
여야가 다음 달 10일부터 국정조사를 한다지만 크게 기대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늘 그렇듯이 정치가 개입하면 본질은 제쳐두고 지엽적인 문제로 정쟁(政爭)만 하다 끝난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나서야 한다. 관료사회를 쇄신하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가 없다. 지난 정부에서 비롯된 일이라 현 정부의 책임은 상대적으로 가볍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의지만 있다면 썩은 부위를 말끔히 도려내고 새 살이 돋게 할 수 있다. 그것이 개혁이고 법치(法治)다. 이 일 하나만 잘 마무리해도 작지 않은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남은 4년도 앞에선 머리 조아리고 뒤돌아서선 웃는 관료들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릴 각오를 해야 한다.
이재호 논설실장 leejaeho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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