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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12일 19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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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0월 1일 흑인 신입생 제임스 메러디스는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흑인에게 입학이 허용된 것은 개교 114년 만에 그가 처음. 그러나 그는 학교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의 입학에 반대하는 백인 학생들과 주민들로 캠퍼스는 거의 폐쇄 상태였다. 연방 보안관과 교도관, 국경경비대까지 동원됐지만 뚫고 들어갈 수 없었다. 마침내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연방군 1만6000명을 캠퍼스에 진주시켜 그가 등록을 마칠 수 있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충돌로 2명이 숨지고 28명의 보안관이 총상을 입었으며 160명이 다쳤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선 후보 버락 오바마 민주당 상원의원과 공화당 백인 후보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TV 토론이 메러디스 사건 발생 46년 만에 바로 그 캠퍼스에서 열린 것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새 역사의 한 장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TV 토론이 열린 날 캠퍼스에는 양측 지지자가 몰려들었지만 흑백 갈등으로 느껴질 만한 야유나 구호는 거의 없었다. 양측 지지자들 모두 나란히 앉거나 서서 흑인 성가대원들의 노래를 들었고 간간이 박수를 보냈다. 매케인을 지지하는 흑인보다 오바마를 지지하는 백인이 훨씬 많아 보였다. 메러디스 사건을 생각하면 천지개벽이었다.
미시시피대에서 자동차로 1시간 반 걸리는 테네시 주 멤피스에도 들렀다. 1968년 4월 4일 발생한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암살 현장이 보존돼 있는 곳이다. 현장인 로레인 모텔 자리에 들어선 민권박물관은 흑인들의 수난과 민권쟁취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번 대선은 누가 당선되든 다양한 기록이 세워질 것이다. 오바마가 승리하면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된다. 현역 상원의원이 대통령이 되는 것도 케네디 이후 48년 만이다. 매케인이 이기면 여기에 최고령 초선 대통령이라는 기록이 추가된다. 러닝메이트인 세라 페일린은 첫 여성부통령이 된다. 50% 수준이던 대선 투표율이 이번엔 60%를 넘길지도 관심사다.
투표일을 약 3주일 앞둔 현재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매케인의 패색이 짙다. 역전시킬 호재도 없어 보인다. 있다면 ‘브래들리 효과’ 정도다. 브래들리 효과는 198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때 흑인 민주당 후보 톰 브래들리가 백인 공화당 후보에게 여론조사에서는 앞섰지만 실제 투표에서 패한 뒤 생긴 말이다. 백인들이 여론조사 때는 ‘누구를 찍을지 결정하지 않았다’ ‘흑인도 좋다’고 응답하지만 막상 투표 때는 백인후보를 찍는다는 것이다.
1995년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 출신 콜린 파월이 대통령의 꿈을 접은 것도 브래들리 효과를 의식해서였다. 하지만 최근 15년 동안 주(州)단위 이상 선거에서 브래들리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난 적은 없다. 그렇다면 미국은 지금 노예해방 145년, 킹 목사 암살 40년 만에 흑백 인종갈등사에 마침표를 찍게 될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이란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셈이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도입해 나라를 세운 지 60년이 된 우리가 지역과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 정치사의 첫 장을 쓰게 될 날은 언제일까.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