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주헌]엉터리 대학, 묻지마 진학

  • 입력 2008년 10월 3일 02시 58분


국내 대학진학률은 83.8%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대학진학률이 50%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이만저만 높은 수준이 아니다. 더 많은 젊은이가 수준 높은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문제는 대학의 수준이다. 우리 현실은 참담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8년도 세계 경쟁력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대학 교육의 질적 수준은 평가 대상국 55개국 중 53위로 거의 최하위다. 한마디로 엉터리 대학에 묻지마 대학진학인 셈이다.

한국대학 수준 55개국 중 53위

이렇게 높은 대학진학률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 올해 전국 199개 4년제 대학 중 20곳이 입학정원의 70%도 채우지 못할 정도로 심각하다. 입시 지옥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1995년부터 실시한 대학설립 자유화로 대학이 분별없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면 입시 지옥이라도 사라졌는가. 더 논의할 가치도 없는 완전히 실패한 정책이다.

대학 재정을 대부분 등록금에 의존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정원도 채우지 못하는 한계 대학의 교육여건은 굳이 논의할 필요도 없다. 무늬만 대학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데 있다. 대입 학령인구가 급감하기 때문이다. 매년 한계 대학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뜻이다.

한계 대학만이 문제가 아니다. 대학의 평균적 수준도 문제이다. 대학의 질적 수준은 우수 교수 확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수 1인당 평균 학생은 약 48명이다. 4년제 대학만 따져 보아도 37명 정도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치인 15명의 2배 내지 3배가 넘는 수치이다.

OECD 평균치라도 따라가기 위해서 필요한 대학교수는 약 15만 명을 상회한다. 이는 교수의 평균 재직기간을 줄잡아 30년으로 가정해도, 매년 5000명의 교수를 새로 채용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해외 학위 취득자를 감안하더라도, 국내에서 매년 배출되는 9000여 명의 박사학위자 중 거의 반 이상이 교수로 채용돼야 OECD 평균을 따라갈 수 있다.

OECD 따라잡기는 교수 학생 비율 맞추기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과연 5000명에 이르는 우수한 신규 교수를 매년 공급할 수 있는가를 솔직하게 평가해야 한다. 매년 쏟아지는 박사학위자 중 후학을 가르치기에 손색없을 정도로 경쟁력을 갖춘 교수 후보자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냉정하게 가늠해야 한다. 우리 모두 정직해져야 한다. 전국에서 149개 대학이 일반 대학원을 운영 중이고 그중 40개 이상은 1995년 이후 설립된 신생 대학원이라는 사실과 국내 박사과정의 수준 사이에 상관관계는 없을까?

대학 구조조정 좀 더 속도내야

외국인 교수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교수는 우리말을 구사하는 학자이다. 일부 대학에서 영어 강의를 실험하지만 범위가 매우 제한적일 뿐 아니라 교육 효과도 의심스럽다. 자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외국인 교수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영어권 국가와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아무리 세계화를 외쳐도 우리에게 필요한 교수는 자급자족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우수한 대학교수의 공급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결론은 매우 간단하다. 대학 정원을 대폭 줄이는 것 이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대학 정책이 진학 수요에 정원을 맞추는 공급정책이었다면 앞으로는 질 좋은 대학의 정원에 수요를 맞추는 수요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대학 정원의 자연 감소를 기다리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다. 재정 지원을 집중해서라도 좀 더 속도를 내야 한다.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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