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햇볕’의 그늘에서 활보한 탈북위장 여간첩

  • 입력 2008년 8월 28일 02시 57분


탈북자로 위장한 북한의 남파 여간첩(34) 사건은 충격적이다. 북의 국가안전보위부 소속인 그는 2001년 10월 조선족을 가장해 국내에 들어온 후 군 장교들과 내연의 관계를 맺고 군사기밀을 빼내 북에 넘겼다고 한다. 의심받지 않기 위해 탈북자로 신분을 속이고 군부대를 돌면서 반공 강연까지 했다니, 우리의 안보체제가 이토록 허술했나 싶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예견됐던 일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햇볕정책을 펴면서 우리의 대북 경계심과 안보의식이 풀어질 대로 풀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라가 이념적으로 무장해제된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북이 무슨 공작인들 못했겠는가. 기밀을 건네준 한 장교는 상대방이 간첩임을 알고서도 이를 숨겨줬다고 하니 갈 데까지 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유물’로 치부하고,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제2연평해전으로 해군 장병 6명이 사망했는데도 “우리가 반성해야 한다”고 하는 판에 누가 간첩 색출에 열과 성의를 다하겠는가. 방공(防共) 보안 업무 종사자들이 하루아침에 ‘독재 정권의 하수인’쯤으로 매도됐으니, 10년간 단 한 명의 남파 간첩도 검거하지 못한 게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2006년 자생적 간첩조직인 일심회 사건만 해도 당시 김승규 국가정보원장은 “현 정부에서 수사가 매우 어려웠다”고 털어놓지 않았는가.

어느 나라에도 간첩은 존재한다. 우방국 간에도 그러한데 분단된 우리는 오죽하겠는가.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자행됐던 ‘반정부 인사 색깔 덧씌우기’에 대한 기분 나쁜 추억이 있다고 해서 눈앞의 오열(五列)까지 눈감는다면 정부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같다.

아울러 1만4000명에 이르는 탈북자 관리에도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선의의 탈북자들까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해서는 안 되지만 혹여 끼어들지 모르는 불순분자들을 골라내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굳건히 지켜야만 선의의 다수 탈북자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초한 우리의 체제를 신뢰하고 그 품 안에서 내일을 꿈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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