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부형권]“기업의 기대만큼 정부가 제몫 해줘야”

  • 입력 2008년 8월 2일 02시 56분


‘일단 믿고 기다리겠다.’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지난달 31일 ‘전경련 2008 하계 포럼’이 열리고 있는 제주 서귀포시 롯데호텔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에 던진 메시지의 핵심이다.

조 회장은 “한국도 경제 규모가 커서 현 정부의 (분배에서 성장으로의) 경제정책 전환이 실제 효과로 나타나려면 (정부 출범 후) 1년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형 탱크로리도 방향을 바꾸려면 크게 회전해야 하지 않느냐”는 비유도 곁들였다.

최근 경제난의 원인과 관련해 “출범 5개월밖에 안 된 현 정부보다 이전 (노무현) 정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루 전 포럼 개회사에서 강조한 “기업은 투자와 일자리를 늘림으로써 경제 살리기의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발언도 다시 언급했다.

조 회장의 발언은 노무현 정부 말기인 지난해의 같은 행사에서 보여줬던 수세적 태도와 사뭇 달라진 느낌이다. 당시 그는 “돈은 엄청난 겁쟁이다. 미래가 불확실하거나 겁이 나면 어디로 숨어 버릴지 모른다. 투자는 윽박질러서 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업들을 향해 “미세한 돋보기로 새로운 기회를 찾으면 세상에 (투자)할 일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겁쟁이’ 돈을 향해 “용기를 내자”고 주문한 셈이다.

그의 변화에 대해 전경련 관계자들은 “‘기업 친화’ ‘시장 친화’를 내세운 현 정부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전경련 등 경제5단체가 중심이 돼 벌이는 ‘중소기업은 1사 1인 추가채용을, 대기업은 10% 이상 신규채용을 늘리는 캠페인’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이런 자기희생적 노력이 무한정 계속될 수는 없어 보인다.

포럼 행사장에서 만난 한 중견기업의 임원은 “경제가 어려울 때 고용을 늘리는 것은 회사로서는 상당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정부가 정말 잘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 참가자는 “기업들이 정부를 돕는 것이 이윤 추구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내 살길은 내가 찾자’는 각자도생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 회장이 ‘정책 전환의 실질적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한 시기인 ‘현 정부 출범 후 1년’까지는 7개월도 남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업인들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지 않도록 정부 당국자들은 신경을 쓸 시점인 것 같다.

―서귀포에서

부형권 산업부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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