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금난새의 ‘혁신 교향곡’

  • 입력 2008년 6월 21일 03시 11분


세계적 지휘자 금난새 씨는 창의적 문제해결 방법론인 트리즈와 유사한 지혜를 발휘해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했다. 금난새 씨가 유라시안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세계적 지휘자 금난새 씨는 창의적 문제해결 방법론인 트리즈와 유사한 지혜를 발휘해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했다. 금난새 씨가 유라시안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러시아에서 개발된 창의적 문제해결 방법론인 ‘트리즈’가 기업들의 경영혁신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트리즈의 원리를 활용해 울트라폰과 보르도TV 등 세기의 히트 상품을 만들어냈고 LG, 현대차, 포스코, SK, CJ 등도 트리즈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트리즈를 접해본 많은 사람은 “유용하다. 그러나 어렵다”고 말한다. 트리즈는 발명 특허의 패턴을 분석해 창의적 문제해결의 공통점을 40가지 원리로 정리한 것이다. 공학 용어가 많이 등장해 어려워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엔지니어링 분야가 아닌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즈니스 트리즈’는 접근하기가 쉽고 현실 문제 해결에도 유용하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12호(7월 1일자)는 전문가들과 함께 비즈니스 트리즈 이론과 사례, 활용 방법 등을 종합했다. 세계적 지휘자 금난새 씨의 성공 요인을 트리즈의 눈으로 분석한 DBR 기사 내용을 간추린다.》

○ “없으면 만들어라. 이게 창조적 생각이다.”

40년 전 청년 금난새는 지휘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대학에는 지휘과가 없었다. 그는 독학하기로 마음먹고 작곡과에 들어갔다. 물론 오케스트라도, 연습 장소도 없었다. 최고 지휘자가 되겠다는 열정은 있었지만 이를 지원할 만한 ‘자원(resources)’은 태부족이었다. 트리즈는 이런 상황에서 40가지 문제해결 원리 가운데 ‘셀프서비스(self-service)’와 ‘국부적 품질(local quality)’ 등의 방법을 활용하라고 권한다. 그는 트리즈를 알지는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트리즈적 해결책을 찾아냈다.

여기서 ‘셀프서비스’는 버리는 자원과 에너지를 이용하라는 취지의 방법론이다. 예를 들어 퇴직자를 고용하거나 자원을 재활용하라는 것. 금난새는 각 대학에 다니고 있던 서울예고 동창을 불러 모아 문제를 해결했다. 각 대학에 흩어졌지만 연주에 대한 열정이 있던 동창생들을 공짜로 활용한 것. 그는 약 25명을 모아 오케스트라 모양새를 갖췄다. 물론 단원들의 연주 실력에는 차이가 났다. 하지만 반드시 모든 단원의 연주 실력이 같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금난새 씨는 40가지 트리즈 원리 중 ‘전체 품질을 똑같이 할 필요가 없다’는 ‘국부적 품질’의 취지처럼 이를 용인했다.

연습 장소도 문제였다. 그는 미국 공보원 1층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2층에 강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책임자를 찾아갔다. 강당을 연습장으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무작정 강당을 빌려달라는 요구를 들어줄 사람은 거의 없다. 이때 그는 트리즈 원리 중 하나인 ‘사전예방조치(preliminary compensation)’와 같은 취지로 미국 공보원이 거절하기 힘든 조치를 취했다. 그가 이끄는 오케스트라가 미국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해서 공연을 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미국 문화를 알리는 게 최고의 업무이던 공보원으로서는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다. 결국 그는 3개월간 무료로 강당을 썼고, 연주회를 열었을 뿐 아니라 미국 공보원 요청으로 광주 부산 대구 등지를 돌며 순회공연도 하게 됐다.

○ 망해가는 회사 살려야 진정한 CEO

금난새 씨는 베를린대 음대에 입학한 뒤 3년 만인 1977년 카라얀국제지휘자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하며 명성을 쌓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KBS교향악단 지휘자를 맡으며 탄탄한 입지도 구축했다. 하루는 수원시립교향악단에서 연락이 왔다. 1년 전부터 지휘자도 없고, 단원들마저 떠나가는 데다 시에서 오케스트라를 없애려 하니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전까지 이런 오케스트라가 있는지도 몰랐지만 그는 과감한 도전을 선택했다. 물론 주변에서는 정신 나갔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정말 뛰어난 최고경영자(CEO)라면 망해가는 회사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수원시향 재건에도 트리즈 지혜를 활용했다. 우선 ‘사전예방조치’와 유사한 방법으로 수원시청 관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가 활용한 예방조치는 깜짝 오케스트라 공연이었다. 수원시청에서 신년 시무식이 열리는 동안 로비에서 연주를 준비하고 시무식이 끝난 뒤 사람들이 나올 때 음악회를 연 것이다. 공무원들은 이 연주에 감동받았다. 오케스트라를 없애려 했던 간부들은 오히려 단원 보너스를 100% 올려 주기로 했다.

수원시향의 명성을 알린 결정적 계기가 된 청소년 음악회의 성공 요인도 트리즈로 분석할 수 있다. 우선 트리즈의 해결책 중 하나인 ‘셀프서비스’는 버려진 자원을 활용하라는 것 외에도 객체나 시스템이 스스로 기능을 완성하도록 하라는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이 원리대로 청소년들이 용돈으로 표를 구입할 수 있는 수준인 2000원을 티켓 가격으로 정했다.

또 ‘복합재료(composite material)’ 원리도 활용했다. 복합재료는 동일한 재료만으로 구성하지 말고 다른 재료를 섞으라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이란 한 재료만 사용하지 말고 교육이나 해설 같은 다른 요소를 결합하라는 취지다. 그는 국내 최초로 공연 중간에 해설을 넣었다. 또 연주 전 아이들에게 개별 악기 소리를 들려주고 함께 연주했을 때와 비교하게 했다. 휴식시간에는 아이들이 직접 악기를 만져보게 했다. 첫 연주회부터 2300개 좌석 모두가 유료로 매진됐다. 이후 1년 동안 진행된 9차례의 공연 모두 마찬가지였다.

○ ‘다용도’ 방법론을 활용한 성공

수원시향을 그만둔 금난새 씨는 1999년 유라시안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그는 여기서도 모순적 상황에 직면했다. 새로 창단한 ‘벤처’ 오케스트라는 무엇보다 자본력이 취약했다. 하지만 최고 수준의 공연을 하겠다는 게 그의 목표였다. 이런 상황에서 트리즈는 ‘다용도(multifunction)’란 대안을 제시한다. 이는 하나의 물품이나 부품을 여러 용도로 활용하는 발명의 원리다. 예를 들어 침대와 소파를 함께 활용할 수 있게 해 공간을 절약하는 게 대표적 사례다.

금난새 씨는 연습장을 찾다가 포스코센터 강당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는 얘기를 듣고 회사 홍보담당 상무를 찾아갔다. 그런데 강당은 비는 날이 없어 연습실로 쓸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금난새는 강단 대신 포스코센터 건물의 유리로 만든 로비가 맘에 들어 여기서 음악회를 열고 싶다고 제안했다. 건물 로비를 음악회 장소로 활용하자는 ‘다용도’적 사고는 적중했다. 유례없이 건물 로비에서 제야 음악회가 열렸고 이후 베토벤 교향곡 9개 모두가 연주되기도 했다. 로비의 감동을 맛본 포스코 측은 대환영이었다. 포스코는 서울 외에 광양과 포항 공장에서도 더 연주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다용도’ 아이디어로 시작된 한 차례의 연주는 13차례의 콘서트 계약으로 이어졌다.

도움말=김영한 창조경영아카데미 원장

김효준 한국트리즈컨설팅 대표

김남국 기자 march@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 ‘트리즈’는…

모든 발명 과정에 있는

상호 공통의 법칙-패턴

끊임없이 진화 하는 건

‘집단 지성’과 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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