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형준]勞는 체육행사 반납, 使는 제주여행 선물

  • 입력 2008년 6월 9일 03시 01분


경북 포항시의 합금철 생산업체 심팩ANC는 올해 1분기(1∼3월)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다. 좋은 실적의 배경에는 ‘노사 화합’이 있었다.

본보 7일자 A11면 참조 ▶ “회사발전이 곧 사원복지 절감했죠”

심팩ANC는 1988년에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중소기업 내 노조는 사용자에게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기 때문에 2000년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그때부터 민노총은 든든한 ‘맏형’이 돼 주었다. 민노총은 심팩ANC 노조를 대신해 임금협상에 나섰다.

심팩ANC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단체행동을 할 때면 민노총 포항지부 산하 다른 노조원들이 함께했다. 심팩ANC 노조원들은 “회사 입구를 가득 둘러싼 사내외 노조원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심팩ANC 노조원 80여 명은 올해 1월 민노총을 탈퇴했다. 8년간 경험해 보니 득(得)보다 실(失)이 많았기 때문이다.

심팩ANC 노조원은 민노총 지시로 수시로 다른 파업에 동원됐다. 그때마다 회사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했기 때문에 노조원의 임금이 깎였다.

통상 두세 달이면 끝나던 임금협상은 민노총이 개입하면서 9, 10개월이 걸렸다. 노사 간 견해차가 크면 실력행사로 파업을 했다. 파업하는 날만큼 생산이 중단됐고,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줄어들었으며 그만큼 심팩ANC 노조원들의 지갑은 얇아졌다.

현재 심팩ANC 노조는 민노총 탈퇴 후 회사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 뛰고 있다. 회사가 발전할 때 오히려 노조원의 복지가 나아진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회사도 노조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적극 협력하고 있다.

올해 1월 공장 내 전기로에 불이 났다. 노조는 매년 봄 실시하던 체육행사를 올해 자진해 건너뛰었다. 체육행사를 하면 공장 문을 하루 닫아야 하는데, 전기로 교체로 생산 차질이 생긴 마당에 또다시 하루 쉬면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자 회사는 4개조로 나눠 전원 제주도 여행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체육행사를 자진해 건너뛴 데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4개조가 순차적으로 여행을 떠나기 때문에 생산 차질은 없었다.

민노총이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저지 촛불시위에 맞춰 총파업 돌입방침을 밝혔다. 심팩ANC의 경험은 불법파업 참여를 놓고 고민하는 각 기업 노조와 사측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는 생각이 든다.

박형준 산업부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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