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8년 5월 22일 02시 55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현재 결혼한 한국 남성 10명 중 1명은 외국인 아내를 맞이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결혼·출산 행태와 정책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1995년 1만365건으로 전체의 2.6%에 불과하던 외국 여성과의 결혼이 2006년 3만208건(9.1%)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이들 중 농사를 짓는 사람은 12.4%뿐이며, 나머지는 소도시 이상 지역이다. 자연스럽게 새 가족 모델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가족 기능이 전반적으로 약화, 축소되는 반면 가족의 ‘정서적인 지지’에 대한 욕구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가족의 정서적 지지 기능이란 가족이 구성원들을 돌보고 신뢰와 협력으로 유대감을 돈독하게 하는 것이다. 과거의 가족은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하는 제도적 성격이 강했으나 오늘날은 가족 구성원 간의 ‘친밀성’이 강조된다.
하지만 현대의 한국 가족이 정서적 ‘안식처’로 기능하기에는 여러 장벽이 존재한다. 가족 구성원 간 대화 단절, 부부간 권력 및 가정 내 역할 불균형, 세대 간 갈등, 국제결혼의 문제 등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부부간에는 맞벌이 가구의 증가, 여성의 교육 수준 상승 등으로 가족은 ‘변화하는 여성과 변화하지 않는 남성’으로 인해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07년 전국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 수준이나 가구주의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가족 구성원을 괴롭히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왔다. 가구주의 교육 수준이 ‘고등학교 졸업 이하’인 가정에서 가정폭력 발생률은 47.9%였는데 ‘대학 재학 이상’인 가정에선 54.5%로 나타났다. 자녀에게 지원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부모일수록 기대 수준이 높은데, 그에 따라오지 못하는 자녀에게 정서적 폭력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심하게 말하면 요즘 가족은 자녀의 학업과 진학을 통해 계급을 재생산하는 도구가 됐다.
이로 인해 부모 자식 간은 물론 부부간에도 유대관계가 희생되고 있고, 그 결과 가족 구성원 간에 상호 관계가 없는 ‘가족의 타인화’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노인들도 자녀와 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고, 자녀들도 부모와의 동거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홀로 사는 노인의 수도 급증해 가족 구조가 급속도로 파편화되고 있다.
건강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 간 ‘시간’이라는 자원을 서로에게 제공해야 할 것이다. 부부간에는 평등한 권력구조가 형성돼야 하고, 자녀 양육과 가사 노동은 분담해야 한다. 노인들을 위해서는 사회가 가족이 돼 이들을 모셔야 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 가족의 정서적 유대를 회복해야 한다. 사회의 기본 단위로서 가족은 전체 사회 건강성의 척도가 된다. 이 때문에 가족의 건강성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이를 위해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가족관이 세워져야 한다. 정책 당국자는 물론 윤리학자, 사회학자, 관련 기관이 모여 체계적인 가족관 정립을 위한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김용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