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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1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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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 기업은 유교적 가치와 대가족제도라는 독특한 문화적 뿌리를 갖고 있다. 이는 서구의 합리적, 개인주의적 전통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따라서 섣불리 서구식 경영을 도입했다가 성과가 떨어진 기업들이 많다.
이제 경영자들은 유교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유교의 훌륭한 가치를 기업 경영에 접목하면 참신하고 효과적인 한국적 경영모델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교자본주의가 비효율적인 인사관리, 무사안일주의, 엄격한 위계질서로 인한 창의력 저하 등 부정적 요소를 갖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포스트 유교자본주의’의 핵심 이론은 이런 기존 유교자본주의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본은 유학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Back to the Basic)’이다.
유학은 한나라 왕권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면서 중국의 통치철학으로 부상했다. 통치철학으로서의 유학은 사실상 중앙집권을 위한 법가 사상에 가까웠다. 이 과정에서 왜곡된 군신관계가 부자, 부부, 장유(長幼) 등 사회적 관계로 확대돼 남편이 아내를 억압하고, 부모가 자식을 억압하는 것으로 변질됐다.
하지만 본래 유가 이론은 군신, 부자, 부부, 장유, 붕우(朋友) 간 수평적 관계를 추구한다. 군주는 신하를 자신의 존재 근거로 삼고, 신하는 군주를 자신의 존재 근거로 삼는 방식이다. 상대방의 직분에 존중과 사랑으로 협력하면서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전통은 14인의 부사장 협의체가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도요타 등 일본 기업들의 조직 구조에 잘 반영됐다.
군주가 자신의 직분을 넘어서 신하의 직분에 간섭하지 않고, 신하 또한 월권해 군주의 직분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유학은 ‘직분적 개인주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직분의 구분만 강조하면 조직 구성원들 간 관계가 소원해지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법가와 같은 대립과 투쟁의 관계로 변질될 수 있다. 지나친 직무 구분과 내부 경쟁, 엄밀한 평가 등 서구 모델을 도입한 동양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유학은 조직 구성원 간의 사랑과 공동 목표에 근거해 소통을 추구한다. 즉 양(陽) 속에 음(陰)이 있고, 음 속에 양이 있듯 호혜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대립과 갈등을 해소한다. 각자의 직분을 다하면서도 타인과 소통을 통해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다.
구성원 간 사랑을 바탕으로 공동 목표를 이끌어 내는 것이 솔선수범의 리더십이다. 유학은 외부의 무력으로 조직을 경영하지 말고 자신의 수양을 통해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유학의 경영방식은 수신(修身)을 근본으로 보고 있으며, 수신이 되지 않으면 치인(治人)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경영자는 권력에 취하거나 그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고 자신을 갈고 닦아야 조직원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자신을 갈고 닦으며 천도(天道)와 인도(人道)를 따르는 경영자는 기업경영의 관리자이면서 동시에 도(道)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유자(儒者)가 될 수 있다.
권상우 신라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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