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한상준]날뛰는 보이스 피싱…경찰, 전담반 왜 안 만드나

  • 입력 2008년 3월 4일 02시 59분


지난달 29일, A 씨는 낯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대학교입니다. 정시모집에 추가합격했으니 지금 바로 등록금을 납부해 주세요.”

대학입학 시험을 본 자녀가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A 씨에게 수화기 너머의 남자는 빠르게 계좌번호를 불렀다. ‘보이스 피싱(전화사기)’임을 알아챈 A 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A 씨는 “만약 내가 자녀의 대학 추가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는 학부모였다면 꼼짝없이 속았을 것”이라며 보이스 피싱 수법의 진화 속도에 혀를 내둘렀다.

최초의 보이스 피싱은 국세청, 연금공단 등 정부기관을 사칭한 것이었다.

“세금을 환급해 주겠다”며 피해자들을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앞으로 가게한 뒤 돈을 이체하도록 했다. 이후 보이스 피싱은 경찰, 금융기관의 대규모 홍보에 밀려 잠시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진화를 거듭하며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국민 참여 재판이 시작됐을 때는 “배심원으로 선정되었는데도 참석하지 않았으니 과태료를 내야 한다”는 수법도 등장했다. 대통령 취임식 직전에는 “대통령 취임식 참석자로 선정되었으니 인적사항을 알려 달라”는 수법이 나타났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의 보이스 피싱 피해액은 400여억 원에 이른다.

상황이 이런데도 경찰은 “보이스 피싱은 중국 등에 근거지를 두고 대포폰, 대포통장을 사용해 검거가 어렵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범죄는 날개 달린 듯 진화하는데 경찰의 대응은 땅에서 기는 식이다.

결국 보다 못한 한 경찰관이 “보이스 피싱에 대한 경찰청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글을 경찰 내부 통신망에 올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경남 창원중부경찰서 양영진 지능범죄팀장은 최근 “보이스 피싱의 피해자 대부분은 세상 물정에 어두운 서민층이다”며 “단속기간을 정해 놓고 실적관리만 할 것이 아니라 아예 경찰청에서 보이스 피싱 검거 전담반을 설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달 어청수 신임 경찰청장의 취임 직후 각 경찰서에는 ‘경찰이 새롭게 달라지겠습니다’는 구호가 일제히 내걸렸다.

보이스 피싱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정말 새롭게 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한상준 사회부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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