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규진]56.0% 대 70.0%

  • 입력 2007년 11월 30일 02시 59분


농촌경제연구원이 최근 국내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국산 김치와 중국산 김치의 맛 대결을 했다. ‘중국산 김치가 한국산과 비슷하거나 맛있다’는 응답이 56.0%였다. 가격은 중국산이 대략 한국산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한다. 완전 경쟁시장에 가까운 김치시장에선 국적(國籍)과 관계없이 싸고 질 좋은 제품이 이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산 김치 수입이 크게 늘고 있다. 2002년부터 조금씩 들어오던 중국산은 2005년 11만 t에 이어 올해는 20만 t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올 하반기 국산 배추 값이 폭등하면서 중국산 수입은 더 늘어났다.

한국산 김치의 전망은 밝지 않다. 최근 중국 칭다오(靑島)를 다녀온 김치 전문가는 “2005년 기생충 알 파동으로 영세 김치공장 대부분이 문을 닫고 중대형 공장으로 재편됐다. 시설이 국내 공장 수준에 근접했다”고 평가했다. 기생충이 중국산 김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셈이다. 배추와 고추도 한국 품종을 쓰고 있다니 중국산 맛이 한국산과 비슷할 수밖에 없다.

김치 수입이 지금 추세로 늘어나면 연쇄 반응을 일으켜 농업 위기로 번질 수도 있다. 중국김치 수입은 1차적으로 국내 김치공장을, 2차적으로 배추와 고추 등 원자재를 생산하는 농민들을 위협한다. 배추 수요가 줄면 대체작물을 재배해야 한다. 이러면 대체작물 공급이 늘면서 가격이 떨어진다. 김치와 무관한 농산물도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호주산과 미국산 쇠고기가 쏟아져 들어오는 마당에 우리 농민들이 기를 가축도, 재배할 농작물도 없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다행스럽게도 김치 맛 대결에 참가한 주부 가운데 70.0%가 “맛은 비슷해도 중국산을 사먹지 않겠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유가 73%에 달했다. 맛은 비슷해도 중국산을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중국산 고춧가루에서 납 성분이 검출되고, 중국산 불량 음식 파동이 계속된 탓으로 풀이된다. 한국 김치업체와 농민들에겐 희망의 70.0%인 셈이다.

그렇다고 70.0%에 안주할 상황은 아니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김치업체 수는 500여 개지만 자기 브랜드로 승부하는 회사는 20여 개에 불과하다. 상당수 업체는 중국산 배추를 쓰는지도 알 수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전창곤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어떤 배추와 고추를 사용해서 어떻게 유통했는지를 보여 주는 이력관리 추적시스템을 도입해서 국산 김치의 신뢰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중국 업체가 흉내도 못 낼 꿩김치 박김치 전복김치 콩잎김치 우엉김치 등 수백 종의 지역김치를 상품화하는 일도 시급하다고 했다. 이런 노력이 이뤄져야 소비자 신뢰 70.0%를 유지할 수 있다.

사실 한국 김치가 처한 현실은 한국 제조업 전체의 문제다. 세계시장에서 가전 자동차 조선 등 주요 제조업들은 김치의 ‘56.0% 대 70.0%’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등 선진국 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의 신뢰도는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브랜드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킨다는 전략을 세워 놓고 있다.

한국 기업이 앞으로 10년간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70.0%가 상징하는 소비자 신뢰를 어떻게 사수(死守)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규진 경제부 차장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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