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젊은 피 용병’

  • 입력 2007년 10월 2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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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는 평화와 통일이라는 제3의 도전이 기다리고 있으며 여러분이 이라크에서 흘린 땀과 노력으로 도전을 이겨 낼 수 있을 것입니다.” 2005년 2월 1일 이라크 북부 아르빌 자이툰부대를 방문한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병사들 앞에서 쏟아 낸 열변이다. 그의 치하는 “우리는 밖에 나와 있을 때 조국애의 실체를 봅니다. 조국과 밖에 나온 여러분이 만났을 때 진정한 조국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라는 말로 이어졌다. 그는 군복 차림으로 병사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한 뒤 ‘자이툰을 위하여’를 외쳤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가 된 정 전 장관은 자이툰부대를 보는 관점이 2년 8개월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그제 신당 의원총회에서 자이툰부대 파병 연장 반대론을 펴며 “전쟁터에 한국 젊은이들의 피를 내다 팔아 잘살면 된다는 식의 가치를 추구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한국군이 세계 용병의 공급원이 돼도 좋은지 대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의 자이툰부대 방문에는 대권을 노린 이벤트라는 비난이 따랐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을 겸하고 있기는 했지만 통일부 장관의 자이툰부대 방문은 소관 업무와 거리가 먼 것이었다. 당시 정부 내에서도 “자이툰부대가 국무위원과 정치인의 관광 코스가 돼선 안 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때는 자이툰을 이벤트로 활용하더니 이제는 반미좌파 표를 얻기 위해 뱉는 꼴이다.

▷자이툰부대에 대해 ‘도전을 이겨 내는 조국애의 실체’라고 칭송한 것을 잊고 ‘젊은 피를 파는 용병’으로 매도하는 것은 망발이다. 열사(熱沙)의 나라에서 목숨을 걸고 근무하던 병사들은 졸지에 돈에 팔린 용병이 됐다. 2005년 2월의 정 씨와 오늘의 정 씨가 정녕 같은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우리는 수천억 원의 비용을 부담하면서 평화와 재건을 위해 이라크에 파병했다. 장관과 대선 후보는 다르다고 하지만 한 사안을 놓고 180도 달라질 수 있는가. 상황에 따라 말을 후딱 바꾸는 정 후보의 모습에 실망한 사람이 많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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