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아열대 날씨

  • 입력 2007년 8월 11일 03시 03분


“날씨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산 위에는 비가 오지만 계곡에는 해가 비치기 때문”이라고 언론인 W G 베넘은 말했다. 베넘은 변덕스러운 날씨로 유명한 영국 출신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날씨에도 ‘도깨비’니 ‘게릴라’니 하는 수식어가 자연스러워졌다. 집을 나설 때 맑던 하늘이 금세 어두워지고 번개까지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햇빛이 고개를 내민다.

▷요즘 날씨는 정말 종잡을 수 없다. 8월 들어 중부지방에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비가 내렸다. 7월 30일부터 8월 8일까지 10일간 중부지방의 하루 평균 강수량은 16.2mm로 39일간 지속된 장마 기간 하루 평균 강수량 8.7mm의 두 배가량 된다. 서울에 8월 들어 지금까지 내린 비의 양은 120mm를 넘는다. 반짝하는 아침 햇살에 속지 말고 우산 챙기고 반바지를 입고 나서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날씨가 이렇다 보니 한반도가 북위 22도에 위치한 홍콩과 같은 아열대기후대에 진입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근거가 없지 않다. 1977년부터 2006년까지 30년 동안 연평균 강수량은 200mm가 늘었고 평균기온은 0.7도나 상승했다. 특히 겨울이 눈에 띄게 따뜻해져서 지난 30년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겨울 평균기온은 1.4도나 상승했다. 연간 열대야 일수는 1910년대에 5일 미만이었지만 2000년대엔 25일 안팎으로 늘었다.

▷이상기후는 한반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8일 미국 뉴욕에선 새벽에 내린 43mm의 기습 폭우에 지하철이 멈춰 섰다. 폭염 폭우 가뭄 등 양상은 다르지만 이상기후 현상이 지구 온난화와 관계있다는 것은 일치된 의견이다. 온난화로 대륙과 바다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대기 중에 수증기가 많이 발생하고 풍부한 수증기가 기상의 흐름을 바꿔 놓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날씨 패턴은 이례적인 것일 뿐 아열대기후라고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긴 하다. 그러나 온난화 속도가 이렇게 빨라지다 보면 북위 37도의 서울에서도 눈 구경이 힘들어지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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