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김황식 하남시장의 경우

  • 입력 2007년 7월 27일 19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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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식 경기 하남시장은 요즘 잠자리가 편치 않을 것이다. 그는 7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주민소환제의 ‘제1호 자치단체장’이다. 기초단체장의 경우 주민(투표권자)의 15% 이상이 서명하면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할 수 있고, 투표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하고 과반수가 찬성하면 단체장은 물러나야 한다.

상황은 김 시장에게 매우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 소환투표 청구에 3만2000여 명이 서명해 법적으로 필요한 서명자 수(1만5759명 이상)의 두 배를 넘어섰다. 3만5018명 이상이 투표해 1만7510명이 넘게 찬성하면 끝장이니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소신 행정’이냐, ‘독선 행정’이냐

부정부패나 비리를 저질렀거나 무능하기 짝이 없는 지방 수령을 주민들이 ‘리콜’해 쫓아내는 것이라면 주민소환제의 첫 성과로 박수 치면 될 일이다. 그러나 하남시의 경우는 박수 치고 끝낼 일이 아니다. ‘하남 사태’에는 지방행정의 민주성을 앞세워 주민소환 청구 사유(事由)를 제한하지 않아도 되는지, 기초단체선거에 대한 정당 공천이 바람직한 것인지 등에서부터 공동체의 갈등 조정 및 문제 해결 능력 부재(不在)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가 집약돼 있기 때문이다.

‘하남 사태’의 핵심은 간단하다. 시장은 경기도가 공모한 광역(廣域)화장장을 유치하는 대신 지원금 2000억 원을 지역 발전의 ‘종자돈’으로 쓰겠다는 것이고, 이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시장 멋대로 밀어붙이는 독선 오만 졸속 행정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시장은 공청회, 주민설명회를 거쳐 주민투표를 해서 다수가 반대하면 유치 계획을 취소한다고 했는데 무슨 소리냐, 이는 “정치적 반대 세력이 님비현상을 교묘히 이용하고 주민소환제를 악용해 자치단체장의 소신 행정을 가로막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하는 측은 “투표 청구 서명이 3만 명을 넘었다는 것은 일부 주민의 반대가 아니라는 것을 반영하지 않느냐. 책임은 주민들의 반대 여론을 무시한 김 시장에게 있다”고 반박한다.

김 시장이 광역화장장 유치 계획을 밝힌 지난해 10월 이후 하남시는 ‘작은 전쟁’을 치러야 했다. 주민설명회는 반대 주민들의 격렬한 항의로 번번이 무산됐고, 아파트 단지에는 거대한 반대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일부 아파트 주민은 플래카드가 바람에 펄럭거리는 소리로 잠을 잘 수 없으니 떼라고 하고, 시청 공무원들이 나가 떼려고 하면 반대 주민들이 거세게 저항하며 몸싸움이 벌어졌다. 반대 주민들은 혈서 쓰고, 삭발하고, 화형식을 벌이며 반발했다. ‘화장장 설치 반대 범시민단체위원회’와 ‘주민소환추진위원회’가 생겨나고 촛불시위가 이어졌다. 시장과 반대 주민 측의 대화는 단절됐다. 범대위 측은 시장의 공개사과와 화장장 유치 관련 예산을 전액 반납하지 않는 한 대화는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주민투표도 김 시장의 ‘명분 쌓기’라며 반대했다. 남은 코스는 주민소환이었을 뿐이다.

김 시장은 ‘혐오시설’인 광역화장장 유치 문제에 대한 여론 수렴과 주민 설득이 부족했다. 재정이 열악한 시의 발전을 위한 소신 행정이라고 하지만 주민의 공감(共感)과 신뢰를 얻지 못하면 ‘독선 행정’으로 비칠 수 있다. 님비라고는 하지만 아파트 값, 땅 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주민의 재산권도 보호받아야 한다.

소환 사유 제한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이 문제가 시장을 쫓아내는 주민소환의 청구 사유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선거가 선출의 이유를 묻지 않듯 소환 사유도 주민들의 소환 의사만 있으면 된다’고 하지만 우리 현실에서 그 같은 원론이 적절한지는 냉정하게 따져 봐야 한다. 지자체장이 특정 정당 소속인 경우 정파적 반대 세력이 주민소환제를 악용할 개연성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소환 청구 사유는 부정부패와 비리, 법령 위반과 직무유기 등 구체적 사유로 제한해야 한다.

결집된 소수가 이완된 다수를 지배할 수 있다. ‘소수의 역설(逆說)’이다. 주민소환제에도 그런 역기능은 상존한다.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사람은 투표장에 가지 않고 이익이 걸린 사람은 적극적으로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지방행정혁신센터 금창호 소장의 말이다.

전진우 大記者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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