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원목]FTA재협상 과정 제대로 알려라

  • 입력 2007년 6월 19일 03시 02분


코멘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미국이 16일 노동 환경 의약품 항만안전을 비롯한 7개 분야의 재협상 문안을 한국에 제시해 양국이 21일 재협상을 시작한다. 온 국민이 지켜 본 가운데 어렵게 타결한 협상의 결과를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의해 일부나마 재협의해야 한다는 사실은 뼈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협정의 비준을 앞두고 국민의 이성적인 판단이 긴요한 시점에서 반FTA 정서를 감정적으로 자극하기에 충분한 사안이어서 실로 안타깝다.

재협상 요구는 미국의 독특한 권력분립 제도에 기인한다. 미국 헌법은 통상에 관한 규율권한을 전적으로 의회에 귀속시킨다. 행정부는 의회가 특별법을 통해 일일이 범위를 정해서 부여한 협상권한 내에서만 상대국과 협상하도록 돼 있다.

미 의회는 2002년 통상법을 제정하면서 대외통상협상의 기본목표로 핵심 노동기준 충족과 국제 수준의 환경보호를 설정했다. 상대국이 노동 환경 보건 정책을 이용해 미국 제품이나 서비스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도 우선 목표로 포함됐다. 미 의회는 자신이 위임한 권한을 행정부가 적절히 행사해 원하던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판단 아래 협상을 타결한 국가와 노동과 환경 분야를 중심으로 재협상하도록 행정부에 명령한 것이다.

통상 이슈에 관한 한 미 의회의 권한은 막강하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10년간의 통상 분쟁에 관한 통계가 이를 잘 보여 준다. WTO 회원국은 교역 제한 조치가 WTO에 의해 패소 판정을 받으면 판정 내용을 이행해야 한다. 이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사안이 총 26건인데 그중 11건은 미국이 패소한 경우다. 26건 중 현재까지도 판정 내용을 이행하지 못해 상대국의 무역 보복을 당하는 사안이 6건인데, 모두 미국이 패소한 사안이다. 이행을 위해서는 국내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미 의회가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과의 FTA 재협상은 불가피하다. 한미 FTA가 정식으로 서명되지 않은 상태여서 재협상이 국제법적으로 불가능하지도 않다. 이제는 이익의 균형이 깨지지 않는 범위에서 서로 양보할 분야를 선택하는 일만 남아 있다. 미국 의회를 중심으로 강력하게 불만이 제기된 자동차와 농업 분야가 재협상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사실은 이미 달성된 ‘시장 접근’ 상의 균형을 깨는 것을 미국도 원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재협상에서 우리가 잃기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의 노동 환경 관련 입법 수준이 미국에 뒤지지 않음을 인식해야 한다. 또 노동 환경 보건 정책을 악용해 상대국과의 무역경쟁에서 부당한 우위를 누릴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는 것은 진정한 선진국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 국제 수준의 노동 환경 기준을 마련하고 효과적으로 집행하는 방향은 한국 경제의 진정한 선진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재협상 과정과 결과는 정부가 최근 국무위원급 공무원 및 민간위원으로 구성한 FTA 국내대책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철저하게 국민에게 전달해야 한다. 늦게나마 민관 합동의 기구가 탄생해 FTA와 관련된 정보의 제공, 의견 수렴, 갈등 조정, 국회 지원, 보완대책 지원 등의 업무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태세를 갖추게 된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제는 위원회를 중심으로 재협상 과정 및 결과를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국익 차원에서 한미 FTA의 의미를 올바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주적인 절차와 이성적인 설득을 통해 FTA에 대한 지지와 확신을 넓혀 나가는 것만이 또다시 불 붙는 이념 논쟁과 극단적인 국론 분열의 질곡을 헤쳐 나가는 길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법학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