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기홍]‘위안부 왜곡 광고’ 제 무덤 판 日지도층

  • 입력 2007년 6월 16일 03시 01분


“오늘 광고를 보니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왜 필요한지 실감하게 되네요.”

14일 딕 체니 미국 부통령실의 한 간부가 워싱턴의 한 시민단체 활동가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아침에 워싱턴포스트 24면에 게재된 ‘The Facts(사실들)’란 제목의 전면광고를 보고 느낀 불쾌한 감정을 평소 교분이 있는 이 활동가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이 광고는 의원 42명 등 일본의 지도급 인사 63명이 낸 의견광고였다. ‘위안부 동원에 강압이 없었으며, 위안부들은 대우를 잘 받았다’는 주장이 한 면을 채웠다.

숱한 아시아인 피해자들의 증언은 묵살하면서도 네덜란드인 피해 여성의 증언(본보 2월 9일자 A2면 참조)은 외면하기 힘들었는지 “일부 군인들이 규율을 어기고 매춘 행위를 강요한 경우가 있었는데 네덜란드 여성들이 대표적 사례”라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사대주의적 자세마저 느껴지는 광고를 보며 분노와 더불어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내용을 아는 사람이라면 반박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을 얄팍한 논리에 매달려 있는 ‘과거사 확신범’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현실에서 일본의 한계가 새삼 느껴진 것이다. ‘만약 일본이 독일처럼 과거사 문제를 깨끗이 정리할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무서운 강국이 될까’라는 생각에 역설적으로 안도감마저 느껴졌다.

한번 길을 잘못 든 옹고집들은 계속 악수(惡手)를 두게 마련이다. 3월 1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망언은 군위안부 결의안을 ‘핫이슈’로 만들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오늘 광고도 일본 측이 노린 효과를 내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의회 주변에선 “그럼 결의안에 지지 서명을 한 그 많은 미국 의원은 다 진실도 모른 채 부화뇌동했다는 거냐”며 불쾌해하는 반응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에 전면광고를 내려면 13만 달러가량이 든다. 4월에 한인 교포들이 낸 ‘위안부의 진실’이란 광고는 비영리단체의 공익성 광고로 인정받아 3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었지만 수천 명이 10달러, 20달러씩 몇 개월간 모아야 했다. 반면 일본은 워싱턴의 대형 로펌 2곳을 비롯해 화력(火力)이 화려하다. 그럼에도 결의안에 지지 서명을 하는 미 의원은 계속 늘어 14일 현재 140명을 돌파했다.

이기홍 워싱턴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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