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원재]나고야의 힘, 대구의 꿈

  • 입력 2007년 4월 5일 19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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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나고야는 한국으로 치면 대구쯤에 해당하는 도시다.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이병규 선수의 소속팀 주니치 드래건스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대구와 나고야는 여러 면에서 닮았다. 대구는 서울과 부산 사이에 있는 한국 3위의 도시였고(현 4위) 나고야도 수도 도쿄와 제2의 도시 오사카 중간에 있는 일본 제3의 도시다. 섬유산업이 번성한 대구는 여성들의 옷맵시가 뛰어난 곳으로 정평이 났다. 일본에선 나고야가 유행의 중심이다. 도쿄의 패션 디자이너가 ‘나고야 멋쟁이’들의 옷차림에서 힌트를 얻어 신제품을 고안할 정도다.

이승엽 선수가 활약 중인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전력을 대폭 보강했지만 일본 야구계가 공인하는 센트럴리그 최강은 여전히 주니치다. 최근 3년간 우승을 두 차례나 했고 2위를 한 번 했다.

야구 문외한이지만 일본에서 4년간 생활한 경험에 비춰 시즌 판도를 예상하자면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는 주니치다. 물론 야구 이론이나 데이터와는 전혀 무관한 개인적인 감(感)일 뿐이다. 주전 선수들의 실력조차 잘 알지 못하니 틀릴 확률이 훨씬 높을지 모른다.

유일한 근거는 무서운 기세로 뻗어 오르는 나고야의 왕성한 기운이다. 도시에도 성(盛)과 쇠(衰)의 기운이 있다면 지금 일본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곳은 나고야다.

이 도시의 힘은 도요타자동차에서 나온다. 도요타의 본사와 공장은 나고야 도심에서 전철로 1시간가량 걸리는 아이치(愛知) 현 도요타(豊田) 시에 있다. 나고야 역 앞에 연면적 기준으로 일본 최대의 백화점이 들어서고, 인력 모집 전단이 편의점에 쌓이는 것은 도요타와 협력업체 덕택이다. 시민들의 걸음걸이가 씩씩한데 나고야 돔의 관중석인들 시끌벅적하지 않을 리 없다.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지로 대구가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도요타 같은 세계 굴지의 대기업이 대구 근처에 있었다면 유치는 한결 쉬웠을 것이다. 빈약한 산업기반이라는 불리한 여건을 딛고 이뤄 낸 집념의 성과이기에 감동은 더욱 컸다. 하지만 기업이 지역을 살리는 구세주라는 점도 어김없이 확인됐다. 화성산업, 대성그룹, 금복주, 대구백화점 등의 후원은 유치위원회의 활동 못지않게 큰 구실을 했다.

기업은 도시의 성쇠는 물론 도시가 야심 차게 시행하는 프로젝트의 성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수 세계박람회와 평창 동계올림픽,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등 굵직한 국제행사의 유치전에서 기업은 언제나 든든하고 믿음직한 원군이다.

지역 균형발전은 현 정부의 핵심 정책 키워드 중 하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서 확인된 것처럼 해법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대로 장사꾼의 안목을 갖고 먹고사는 문제로 접근하면 된다. 작전을 짜듯 공기업을 인위적으로 옮기는 것보다는 민간기업이 스스로 지역을 찾도록 하는 편이 더 효율이 높다. 밀라노 프로젝트 같은 거창한 정책도 나쁘지 않지만 더 급한 것은 실제로 투자하고 생산하는 기업의 유치다.

육상대회가 끝난 후 대구의 모습이 궁금하다. 삼성 라이온즈는 주니치에 지더라도 대구는 나고야를 이겼으면 좋겠다.

박원재 특집팀 차장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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