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성희]대학 중퇴자 클럽

  • 입력 2007년 3월 26일 02시 56분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 델 컴퓨터 회사 사장 마이클 델, 미디어 재벌 테드 터너, 배우 우디 앨런, 제임스 딘, 브래드 피트….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대학 중퇴의 학력 소지자라는 사실이다. 세칭 ‘대학 중퇴자 클럽’의 주요 멤버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6월 미국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명예졸업장을 받고 축하 연설까지 한다고 한다. 학교를 떠난 지 32년 만의 금의환향이다.

빌 게이츠 32년 만의 명예졸업장

하지만 감동은 아직 이르다. 이미 2년 전, 미국 서부의 하버드대로 불리는 스탠퍼드대에서 또 다른 대학 중퇴자인 스티브 잡스 애플 컴퓨터 사장이 졸업 연사로 초청돼 연설을 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잡스 사장은 스탠퍼드대에 발을 들여놓은 적도 없고 학력이라야 리드대 한 학기 수료가 전부이다. 스탠퍼드대 졸업 연설에서 잡스는 사회진출을 앞둔 엘리트를 향해 ‘배고프고 미련하게 살라(Stay Hungry, Stay Foolish)’는 성공의 역설을 폈다. 그의 말은 명연설로 남아 아직도 여러 사람의 입에 회자된다.

두 거물은 대학 졸업장을 받지 못했지만 그들에게 대학교육은 여전히 유용했다. 게이츠는 대학시절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를 개발하고 평생의 사업 파트너인 스티브 발머 현 마이크로소프트 사장을 만났다. 잡스는 리드대에서 청강한 서체 과목을 바탕으로 훗날 매킨토시를 아름다운 타이포그래피를 가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로 개발했다. 게이츠는 한술 더 떠 마운트휘트니 고교 졸업식 연설에서 “대학 교육을 받지 않고 연봉이 4만 달러가 될 것이라는 상상은 하지 말라”고 했다. 졸업장은 필요 없어도 교육은 절실하게 중요하다는 메시지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성공한 ‘대학 중퇴자’가 많지 않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입지전적 인물은 적지 않으나 그들이 영예로운 대학 졸업식장에 연사로 초청돼 대학 나온 사람들을 감동시켰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중퇴라는 단어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중퇴한 학원 강사가 대학졸업장을 위조해 덜미가 잡혔다는 이야기나, 중퇴를 하고도 자격증 취득이 가능한지를 묻는 인생 상담이 주로 검색된다. ‘빛나는 졸업장’이 없는 인생이 우리사회에서 얼마나 녹록하지 않은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만약 게이츠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흔한 대학 동창회 한 번 못 가고 선후배 동아리의 덕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변변한 미팅을 하기는커녕 중매쟁이 수첩에도 오르지 못했을지 모른다. 학벌이 방패막이가 되는 모든 상황에서 맨몸으로 헤쳐 나가야 했을 것이다. 그는 좋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그의 성공은 좋은 학교가 아니라 좋은 사회 덕분이었다.

졸업장 없인 행세 못하는 한국은…

최근 우리 사회의 교육 현안인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본고사 불허 등 소위 ‘3불정책’에 대한 논란은 교육 자체보다 대학 입시를 둘러싼 기술적인 문제에 정책 역량을 집중한다는 느낌을 줘 안타깝다. 3불정책을 옹호하는 측은 교육의 기회 균등을, 반대하는 측은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주장하지만 양측 모두 우리 교육문화를 학벌 아닌 교육 위주로 개선할 것 같은 심증은 주지 못한다. 학벌보다 교육이 우선인 사회라면 초등학교 어린이에게 예비 특목고 선행학습을 시키는 우스꽝스러운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고등학교 급훈 중에 ‘지하철 2호선을 타자’가 있다. 서울 신촌의 세 개 대학과 명문 S대, 안정된 직업 때문에 인기가 높은 교대가 있는 2호선이야말로 고교생에게 꿈의 열차요, 권력의 상징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교통수단은 다양하다. 게다가 배움에는 종착역이 없다.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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