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주성하]탈북자 ‘낙인’찍는 주민등록번호

  • 입력 2007년 2월 9일 03시 00분


2002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새터민 최영민(가명·30) 씨는 겨울 휴가 기간에 중국 여행을 하려다 황당한 일을 겪었다. 여객선을 타고 2일 중국 톈진(天津)에 도착해 선상비자를 받으려다 비자 발급을 거부당했던 것. 중국 직원은 “탈북자의 입국은 금지됐다”며 그와 생후 두 달된 어린 딸, 역시 새터민인 아내를 선실에 가두고 자물쇠를 채웠다. 하루 종일 굶은 최 씨 가족은 다음 날 한국으로 추방됐다.

어떻게 여권만 보고 탈북자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을까. 비밀은 주민등록번호에 있다.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들은 경기도에 있는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주민등록증을 받는다.

새터민에게 부여되는 주민등록번호는 뒷자리 7개 숫자 중 앞에서 2, 3번째 숫자가 모두 같다. 지역을 나타내는 이 숫자만 알면 새터민을 쉽게 가려낼 수 있다. 신분을 드러내는 일종의 ‘숫자 낙인(烙印)’인 셈이다.

2월 초부터 주한 중국대사관은 새터민에 대한 비자 발급을 전면 금지했다. 북한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들 역시 주민등록번호로 새터민을 가려낸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7일 “비자 발급은 각 국가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새터민이 아닌 한국 국민이 단체로 비자 발급을 거부당해도 그렇게 대응할 것인지 궁금하다.

주민등록번호의 폐해는 크다. 대다수 기업은 직원 채용에 ‘해외여행 결격사유가 없는 자’라는 조항을 내건다. 가뜩이나 취업이 어려운 새터민은 이 조항에도 걸린다. 새터민 중에는 중국 체류 경험을 살려 보따리 장사를 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도 밥줄이 끊길 딱한 처지다. 설사 중국에 도착해도 입국 즉시 북한 출신임이 드러나 신변 위험까지 따른다.

대책은 없을까. 하나원 관계자는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현재의 주민등록법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탈북자의 신분을 감안해 특례 조항을 만들면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하면 특례 조항 하나 만들면 쉽게 해결될 문제를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한국에 정착한 새터민은 벌써 1만 명을 돌파했다. 앞으로 이 수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위험과 불이익에 노출돼 있는 새터민의 처지를 아랑곳 않고 있는 정부의 무신경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주성하 국제부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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