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北韓변수’를 믿는 사람들

  • 입력 2007년 2월 2일 19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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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대선을 앞두고 ‘북한 변수’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북의 움직임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선거가 영향을 받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북이 휴전선 부근에서 무력도발이라도 하면 보수 진영의 결속력이 강해지고, 반대로 유화적인 태도로 나오면 좌파 진영의 입지가 넓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선거 때면 흔히 겪는 일이어서 기우라고 하기도 어렵다.

이번 선거도 그런 조짐이 보인다. 북이 한나라당을 겨냥해 반(反)보수 대연합을 촉구하고 나선 것부터가 심상치 않다. 북이 연초부터 이토록 노골적으로 특정 정당 반대 운동을 편 적이 없다. 1997년, 2002년 대선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이유가 뭘까.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아무래도 남북관계가 전만 못할 것이다. ‘상호주의의 원칙에 입각한 포용정책’이 한나라당의 대북정책이고 보면 퍼 주기 식 경제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미동맹도 지금보다는 돈독해질 터이다. 대북 압박과 제재의 강도가 그만큼 세질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핵실험까지 한 북한이 쌀, 비료 몇 포대 더 얻자고 이처럼 극렬하게 한나라당 배척 운동을 벌일까. 더 본질적인 이유는 없는 것일까. 북의 대남전략이라는 큰 틀에서 이 문제를 볼 필요가 있다. ‘착각은 자유’라고 하지만 북은 이미 연방제 통일과정이 시작됐다고 믿고 있다. 북의 신년 공동사설을 다시 보자. “남조선에서 반(反)보수 투쟁은 민족 대단결 실현에 중요한 고리이며, 사회의 진보와 통일운동의 진전을 위한 관건적 요인이다”

反보수연합, 연방제통일 터 닦기

상투적인 북의 선동 문구쯤으로 여길지 모르나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여기서 말하는 ‘민족 대단결’은 곧 ‘연방제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추동력을 뜻하기 때문이다. 북은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일관되게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가는 통일을 추구해 왔고, 갈수록 자신감도 붙고 있다. 이는 2005년 신년사설에서 내걸었던 ‘통일애국공조’가 2006년 ‘민족 대단합’을 거쳐 올해 ‘단합 실현’으로 바뀐 데서도 알 수 있다.

연방제 통일로 가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한나라당이 집권해서는 안 된다. 우파 정권이 들어서면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공들여 구축한 통일 기반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북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지난달 4일 담화를 통해 “한나라당 집권은 남조선 내부 문제만이 아니다”고 한 것은 그래서다. 남북이 통일 과정에 들어갔기에 북도 간섭할 수 있다는 것인데, 한마디로 좌파가 계속 집권해서 연방제 통일의 꿈을 이어갈 수 있도록 개입하겠다는 얘기다.

북의 이런 상황인식과 전략은 아무리 가치중립적으로 본다고 해도 망상(妄想)에 가깝다. 김정일은 남한사회의 혁명역량이 커졌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착각이다. 한미동맹만 하더라도 툭하면 반미구호가 튀어나오지만 그 중요성을 부정하는 국민은 없다. 북은 대화의 상대이면서 동시에 대결의 상대이므로 동맹 유지가 필수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좌파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6·15공동선언의 동력을 살려나가야 통일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믿을 것이다.

이 간격이 쉽게 메워지지는 않겠지만 하나만은 분명히 해 두고 싶다. 북한의 한나라당 공격은 단순한 우파 정당 흠집 내기가 아니다. 좀 더 큰 그림 속에서 주도면밀하게 추진되고 있는 통일전략의 일환이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안 하고를 떠나 북의 의도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햇볕정책 10년 대선 심판받아야

북은 한나라당을 때림으로써 벌써 우리사회를 ‘통일세력 대 반통일세력’ ‘평화세력 대 전쟁세력’으로 나눠 선거판을 사이비 보혁(保革)대결로 몰아가고 있다. 대체 누가 보수고 누가 진보인가. 북의 연방제 통일 노력에 동참하면 진보인가.

북으로 하여금 남의 좌파 정권의 가치(價値)를 새삼 깨닫게 만든 것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다. 맹목적 햇볕정책 10년이 김정일의 오른손엔 핵무기를, 왼손엔 연방제 통일안을 쥐여 주었다. 이것도 부족해 또 ‘북한 변수’에 기대려 하는가.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 국민에게 한번 물어보자.

북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해 선거에 미칠 영향을 차단하고, 두 정권의 대북정책 10년에 대한 국민의 엄정한 심판을 구하는 것이 이번 대선이 갖는 또 하나의 시대적 소명일 것이다. 그러기 전에는 평화니 통일이니 하는 말은 잠시 접어 두자.

이재호 논설실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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