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담배제조-매매금지’입법 주도 박재갑 서울대 의대 교수

  • 입력 2007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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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갑 서울대 교수는 국립암센터 원장으로 취임한 2000년부터 ‘담배와의 전쟁’에 앞장서 왔다. 박 교수는 “세계적으로 금연 바람이 불고 있는 지금이 바로 금연운동이 승리할 수 있는 최적기”라며 “지난해 국회에 입법청원한 ‘담배 제조 및 매매 등의 금지에 관한 법률’ 통과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박재갑 서울대 교수는 국립암센터 원장으로 취임한 2000년부터 ‘담배와의 전쟁’에 앞장서 왔다. 박 교수는 “세계적으로 금연 바람이 불고 있는 지금이 바로 금연운동이 승리할 수 있는 최적기”라며 “지난해 국회에 입법청원한 ‘담배 제조 및 매매 등의 금지에 관한 법률’ 통과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연초부터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금연 운동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우선 국내에서는 8년을 끌어 온 ‘담배소송’ 1심 선고공판이 18일 열린다. 폐암으로 숨진 애연가와 가족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다. KT&G가 패소하면 국내에서도 흡연에 따른 피해에 대한 책임을 담배제조회사에 물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셈이다. 또 현재 국회에 청원된 ‘담배 제조 및 매매 등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국내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지난해 44.1%로 1980년대 이후 가장 낮은 수준.

올해 들어 미국, 유럽과 홍콩 등지에서도 ‘공공장소에서의 흡연 금지’ 관련 법안이 강화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금연 전도사이자 국립암센터 원장을 지낸 박재갑(59) 서울대 의대 교수를 5일 만나 금연운동의 현주소와 향후 방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올해 초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금연 관련 국내외 보도를 예로 들며 “지금 당장 (금연 운동) 고삐를 바짝 조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한국은 세계 최악의 ‘담배 재난지역’이므로 세계적 추세를 따라 올해 안에 반드시 흡연을 규제하는 법적 장치가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그는 지난해 2월 ‘담배 제조 및 매매 등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청원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상황이 얼마나 더 나빠질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2000년 3월 국립암센터 원장이 되면서 ‘금연 전도사’가 됐다. 담배가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환자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심각성을 절감했다.

암 중에서 사망률이 가장 높은 폐암 원인의 80% 이상을 흡연이 차지한다, 흡연자가 폐암에 걸릴 확률이 비흡연자보다 15∼80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각계각층,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흡연의 폐해를 알렸다. 초중고교, 대학, 군부대, 주부모임, 시민단체에서의 강연 횟수가 지금까지 400회에 이른다.

박 교수는 “거리에서의 흡연을 금지하는 법안이 5년 전에 거론되다가 흐지부지된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자본의 힘이 있었을 것”이라고 관련 업계의 로비를 우려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연세대 보건대학원은 2005년부터 2020년까지 흡연과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할 한국인이 86만4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1년에 5만4000명, 하루에 148명이 담배 때문에 죽는다는 계산.

“6·25전쟁 때 3년간 사망한 국군의 수가 14만 명입니다. 하루에 130명 정도 전사했던 셈이죠. 지금 한국에서는 보이지 않는 담배와의 전쟁이 수십 년간 계속되는 겁니다.”

박 교수는 의료인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담배의 폐해가 이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며 아쉬워한다. 그는 “미국에서 3% 정도인 남자 의사의 흡연율이 한국은 30%에 이른다”며 후배 의사들의 반성을 촉구했다.

지난해 4월 국립암센터 원장에서 물러난 박 교수는 보건당국과 시민단체의 소극적인 태도도 문제 삼았다. 식품에서 이물질이 조금만 나오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비소 등 발암물질 69종이 들어 있는 담배를 가만히 놔두는 모습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수많은 장어 식당을 문 닫게 만든 ‘말라카이트그린’은 담배연기 속 발암물질에 비해 위험도가 한참 떨어집니다. 담배 30갑에 들어가는 청산가스를 모으면 체중 70kg짜리 성인을 죽일 수 있죠.”

박 교수는 폐암 판정을 받는 순간 환자의 집안이 ‘지옥’이 되는 사례를 많이 봤다. 환자와 가족이 겪어야 하는 정신적 물질적 피해는 상상 이상이라고 한다.

그는 “가족에게 사랑한다고 하면서 담배를 피운다면 아주 지독한 거짓말을 하는 것이지만 흡연자를 비난하지 말고 오히려 가장 큰 피해자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흡연자는 합법적인 상품을 소비하며 많은 세금을 내지만 피해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논리다.

그는 담배 판매 수익의 일부를 흡연자 질병 치료에 쓰자고 제안한다.

담배 재배 농가와 관련해서 박 교수는 “10년 정도 계획을 잡고 담배를 몰아내야 한다. 재배 농가에 대체 작목을 마련하는 등 공감대를 넓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담배를 규제하지 않는 정부는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소홀히 한다고 봐야 한다”며 “‘담배 제조 및 매매 등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누가 어떤 이유로 반대하는지 반드시 기록해 역사에 남기겠다”고 밝혔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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