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병기]하버드급 대학원 키워 두뇌유출 막아야

  • 입력 2006년 12월 21일 03시 01분


해외 유학생이 급증하고 있다. 그 증가 추세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일 년 내내 수출해서 벌어들인 외화가 해외 유학과 여행 경비에 다 들어갈 정도이다. 미국 내 한국 유학생 수는 중국과 인도에 이어 3위라고 한다. 중국 일본 등지에도 한국 유학생이 넘치고 있다. 얼마 전 중국 칭화대 교수 한 분이 한국 학생들은 왜 그렇게 칭화대에 유학을 많이 오느냐고 물었다. 중국어가 중요해지니까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답하니까 그렇지 않다고 했다. 중국어보다 다른 분야에 학생이 훨씬 더 많다고 했다.

유학생이 밖에 나가 배우는 것은 좋지만 여러 가지 후유증도 낳는다. 외화 유출로 나라 살림에 큰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 유학생들이 귀국하지 않고 해외에서 취업해 두뇌 유출 문제를 낳는다.

이로 인해 국내 첨단 기술 산업체들은 고급 인재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과학기술 분야 유학생 10명 중 7명은 귀국하지 않고, 돌아온 박사조차 40%가량은 기회가 되면 다시 나가고 싶다고 했다. 글로벌 시대에 고급 두뇌 유출을 막고 우수 인재를 유치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가 불러온 유학 장려

우수 이공계 인재가 대거 해외로 유출되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이공계 기피’를 타개한답시고 정부가 수립한 해외 유학 장려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유학을 보내 준다면 우수 고교생들이 이공계 대학으로 몰려올 것이라 계산하고 정부는 매년 1000명의 국비 유학생을 해외로 보내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런 분위기를 타고 모 그룹은 고액의 해외 유학 장학생을 모집했다. 대학생들의 분위기는 완전히 유학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누가 5만 달러씩 5년간 보장 받는 해외 유학을 마다하고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려 하겠는가? 유학을 못 가면 2류 취급을 받게 될까 두려워하는 ‘또래 압박(peer pressure)’ 효과까지 작용해 무분별하게 해외 유학에 쏠리게 만들었다.

정부의 해외 유학 장려 정책은 즉흥적으로 수립한 비과학적인 정책이었다. 그 정책이 가져올 장기적인 파급 효과나 국가의 고급 인력 공급 구조를 고려하지 못하고 당장 눈앞의 불끄기에 급급한 측면이 있다.

외환위기 이후 지펴 놓은 해외 유학의 열기는 지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공교육의 붕괴와 더불어 오히려 초중고교에까지 번져 갔다. 또 해외 유학 열풍은 곧바로 국내 대학원 인재 고갈로 이어졌다. 해외 유학으로 외화 유출과 고급 두뇌 유출이라는 외상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속으로 더욱 깊은 상처가 곪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국내 대학원 교육의 쇠락이었다.

오늘과 같은 고도 기술 시대에 기술은 공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있다. 따라서 고급 인재를 기르는 능력을 보유하지 않는 한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그 고급 인재를 키우는 곳이 바로 대학원이다.

물론 해외로 유학 간 고급 인재를 국내에 유치해서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애국심에만 호소할 수는 없다. 귀국해서 일할 여건을 제공해야만 가능하다.그러기 위해선 국가보다 기업체가 할 일이 더 많다. 그런데 업체들이라고 무작정 해외 유학생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실력이 중요하다.

교육-연구 인프라에 투자를

과거에는 정부가 한국과학기술원을 설립하는 등 국내 이공계 대학원 교육 기반 확립을 위해 많은 투자를 했다. 포항공대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교육기관으로 정착돼 가고 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국내 대학의 연구 교육 능력도 크게 높아졌다. 그런데 어설픈 해외 유학 장려 정책과 그로 인한 무분별한 유학 열풍이 힘겹게 쌓아온 국내 대학원의 고급 인력 공급의 근간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고급 두뇌 유출이 문제라고 인식되는 바로 이 시점에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곳은 바로 국내 대학원이다. 해외 유수 대학원에 견줄 만한 교육 및 연구 인프라를 갖추도록 투자를 해야 한다. 국내 대학원 육성 노력을 10년만 지속하면 세계 수준의 대학이 10개 정도는 생기고 고급 두뇌 유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병기 서울대 교수·정보통신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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