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홈]대출 門좁아진 봉급생활자 대부업체라도 찾아야할 판

  • 입력 2006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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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담보대출 규제가 20일부터 시행됐다. 주거 환경이 좋은 서울 시내 30평형대 아파트 값은 6억 원이 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아파트를 살 때는 총부채상환비율(DTI)에 따라 최대 대출금액이 정해진다. 연 소득이 적으면 그만큼 빌릴 수 있는 돈도 적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20일부터 시행됐다. 주거 환경이 좋은 서울 시내 30평형대 아파트 값은 6억 원이 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아파트를 살 때는 총부채상환비율(DTI)에 따라 최대 대출금액이 정해진다. 연 소득이 적으면 그만큼 빌릴 수 있는 돈도 적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가족이 모두 잠든 오전 1시. 나고민(가상인물·43) 씨가 캄캄한 거실에 혼자 앉아 있다. 잠자리에 들었다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 때문에 거실의 소파를 찾았다. ‘이러다 우리 집 이사 가는 게 차질을 빚지 않을까.’ 최근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며 주택담보대출을 규제하자 불현듯 자금 확보가 가능할지 걱정됐다. 내년이면 중학교에 진학할 딸을 생각해서 같은 33평형 아파트지만 주거 여건이 좀 더 나은 지역으로 이사 갈 계획을 세워 뒀기 때문이다.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적용을 엄격히 한다던데….’》

여느 직장인들처럼 일에 파묻혀 생활한 터라 새 제도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꼼꼼히 따져보지 못했다. 기존에 은행에서 빌린 돈이 8000만 원가량 있는 것도 신경 쓰였다. ‘마음에 둔 아파트는 7억5000만 원쯤 하던데, 바라는 대로 살 수 있을까.’

좋든 싫든 새 제도는 시행됐다.

‘내가 빌릴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아두는 것이 최선이겠군’. 그가 새벽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다.

○ 일밖에 몰랐던 직장인의 돈 빌리기

다음 날 점심 시간, 그는 밥도 먹지 않고 득달같이 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자금동원 능력이 무엇보다 궁금했다.

예전 같으면 6억 원 초과 아파트라도 대출기간을 길게 잡으면 집값의 60%까지 담보를 잡힐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40%밖에 인정받지 못한다. 집값이 7억5000만 원이라면 대략 3억 원.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시세가 5억5000만 원이니 얼핏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DTI에 있었다. LTV와 DTI를 적용한 금액 중 적은 금액만 대출받을 수 있기 때문.

DTI가 적용되는 아파트가 투기지역의 6억원 초과 아파트에서 수도권의 투기과열지구로 확대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럼 수도권 투기과열지구는 어디 어디라는 거야.’

건설교통부 홈페이지를 뒤졌다.

‘이거 뭐야, 말장난이잖아. 도서 산간 지역을 뺀 서울, 인천, 경기도 전체가 투기과열지구잖아. 차라리 그냥 6억 원이 넘는 수도권 아파트라고 할 것이지.’

중소기업에 다니는 그의 근로소득원천영수증에는 연봉이 약 5000만 원으로 적혀 있다. 6억 원 초과 아파트를 구입할 때 DTI 40%가 적용돼 기존 대출금 8000만 원을 빼면 1억5000만 원이 최대 금액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연 이율 6%, 1년 거치 19년 분할상환 조건(우리은행)이다.

‘5억5000만 원에 1억5000만 원을 더하면 7억 원. 5000만 원이 모자란다는 얘기네. 여기에다 취득세, 등록세와 이사 비용 등을 감안하면 7000만∼8000만 원은 더 마련해야 하는군.’

○ 다른 곳에서 돈을 찾다

정부 발표에서는 제2금융권의 LTV가 50%여서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처럼 알려졌지만 직장인들에게는 ‘그림의 떡’. 6억 원이 넘는 아파트를 사려면 DTI 적용을 받아 LTV 적용 조건보다 훨씬 적은 돈만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DTI 적용을 받지 않는 6억 원 이하 아파트를 산다면 제2금융권의 LTV 50%가 유용할까. 그것도 아니다. 6억 원 이하 아파트에 대해서는 금리가 싼 은행에서도 집값의 60%까지 빌려주기 때문에 굳이 상호저축은행을 찾을 이유가 없다.

나 씨는 혀를 차며 혼자서 중얼거렸다. “결국 소득이 많은 자영업자나 전문직 종사자들만 선택의 폭이 넓은 셈이군.”

기존 대출금 탓에 여윳돈이 거의 없는 나 씨로선 신용대출밖에 방법이 없었다.

“연봉이 5000만 원이군요. 신용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연리 7%로 연봉의 80%, 즉 4000만 원까지 신용대출이 가능합니다. 대기업에 다니면 대출액을 좀 더 늘릴 수 있고요.”

점심 시간이지만 아직 식사를 못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은행원의 답변이다.

나머지 3000만∼4000만 원은 어디서 채울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축은행에도 전화를 해 봤지만 은행에서 DTI를 적용받아 대출받았으면 추가 대출은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금융 전문가라는 친구가 알려준 대안은 있다. DTI 비율을 높게 적용받으려면 본인의 소득이 많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된다. 부인의 소득이 있다면 합쳐서 계산하는 방법이 있다. 또 임대 소득이나 기타 불규칙한 소득이 있을 경우 증빙 서류를 챙겨가면 합산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 씨에게는 모두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마지막 대안으로 남은 것은 대부업체. 여기서는 LTV와 DTI의 한도 금액을 넘겨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주택 시세의 80%까지 대출해 주는 곳도 있단다.

‘나머지 금액은 얼마 안 되니까 대부업체를 한 번 이용해 볼까. 내키지는 않지만 돈이 모자란다면 대부업체라도 찾아야겠지.’

갑자기 속이 쓰려 왔다. 그때서야 나 씨는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총부채상환비율 제도(DTI·Debt to Income):

돈 갚을 능력이 연 소득에 있다고 보고, 연 소득에 따라 대출한도를 정하는 제도. 매년 갚아야 할 대출 원리금이 연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구한다. 최근의 규제 강화로 수도권 내 6억 원 초과 아파트에는 무조건 적용되고 지방에서는 투기지역 내에 있는 6억 원 초과 아파트에 적용된다.

:담보인정비율(LTV):

집값의 얼마까지를 담보로 인정하는 지를 나타내는 비율. 여기서 집값은 통상 국민은행 아파트 시세에 나와 있는 것이 기준이다. 은행은 집값의 40%까지, 제2금융권은 50%까지 빌려 준다. 6억 원 이하의 아파트에 대해서는 집값의 60%까지 빌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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