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곽승준]뉴라이트 운동, 정치외도 경계하라

  • 입력 2006년 11월 15일 03시 00분


지난날 한국 사회의 시민운동은 이른바 진보 진영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런 가운데 재작년부터 불기 시작한 ‘뉴라이트’ 운동은 그동안 무관심과 무임승차 의식에 젖어 시민에게 다가가지 못한 보수층이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크다. 특히 사상체계로서 보수의 개념을 제시하고 그동안 보수의 상징으로 잘못 인식돼 온 극우, 반민주, 부패세력과 진정한 보수는 다르다는 것을 실천을 통해 국민 속에 전파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보수시민운동의 첫걸음을 뗀 뉴라이트는 최근 한나라당과 겹쳐지고 있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주고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였던 한 인사가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 공동본부장에 임명되고, 일부 뉴라이트운동 집행부 인사도 한나라당과의 연대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시민운동의 자명한 공통점이 있다. 시민운동이 제도권, 특히 정치권으로 들어가면 그것으로 시민운동은 생명을 다한다. 시민의 힘으로 잘못된 정치권력과 정부기능을 견제하고 감시하며 새롭게 바꾸는 주체에서 이제는 자신이 감시받아야 할 대상으로 한순간에 바뀌게 된다.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이 급성장한 시기는 1990년대다. 국내 시민단체의 핵심은 주로 제도권으로 들어가기보다는 사회 변화에 관심 있는 1980년대 운동권이 주축이다. 특히 김정일과 북한에 비판적이며 환경 노동 복지 분야에 관심 있는 민중민주(PD)계열이 많이 진출했다. 여기에 정책자문그룹으로 교수 변호사 종교인 등 다양한 전문직 종사자가 합세한다.

급성장하던 시민운동이 절정을 이룬 동시에 큰 전환점을 맞은 것이 2000년 16대 총선에서 시민단체가 연대해 만든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다. 여기서 정치권력과 시민운동의 관계에 대한 시사점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총선시민연대가 발표한 ‘공천반대의원 명단’ 67명 중에는 여당인 민주당이 16명, 한나라당이 30명, 자민련이 16명, 무소속이 5명 포함되었다. 당연히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여당의 홍위병” “마녀 사냥식의 위험천만한 혁명적 작태”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 와중에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명단에 대해 “정치권이 불행히도 국민적 신뢰를 잃어 결국 국민이 시민단체의 판단에 의존하는 결과가 되었다”며 총선시민연대를 응원했다. 여기서 총선시민연대의 일차적 위기가 온다. 사실 여부를 떠나, 김 대통령의 발언은 총선시민연대가 정권과 연대해 여당에 유리한 활동을 하는 단체로 국민이 생각할 빌미를 준 것이다. 특히 시민단체 집행부가 대부분 ‘진보 성향’인 점이 그런 추정에 힘을 실어 줬다. 총선시민연대는 ‘김 대통령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한 정치적 발언’이라고 반박하며 여당과의 연대를 강하게 부정했다. 최소한 총선시민연대는 시민단체가 표면적으로 특정 정치권력과 손을 잡으면 생명을 다한다는 기본 원칙은 알고 있었던 셈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김 대통령의 이러한 지지발언에도 불구하고 총선시민연대의 낙천 대상자 명단을 실제 공천에 반영한 비율을 살펴보면 민주당보다 한나라당이 훨씬 높았다는 점이다. 겉으로 명단 발표에 펄펄 뛰던 한나라당은 이 명단을 민정당 출신의 영남권 중진들을 대폭 물갈이 하는 데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당시 이회창 총재는 2002년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본인의 입지를 대폭 강화해 쉽게 한나라당 대권후보가 될 수 있었다.

이처럼 시민단체의 정치적 외도는 예상하지 못한 복잡한 결과를 낳는다. 특정 정당과의 연대를 강하게 부정했고 정치적 이득도 엉뚱한 곳이 챙겼지만, 그 이후 국민은 원래 설립 목적과 상관없는 외도를 한 시민단체들을 점차 멀리하게 된다.

뉴라이트 운동은 여기서 큰 교훈을 얻어야 한다. 시민운동과 정치권력은 엄연히 구별된다. 뉴라이트 운동이 새로운 시대정신에 맞는 보수의 가치를 전파하는 게 목적이라면 그 목표가 절대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 여당이건 한나라당이건 간에 그 가치에 맞지 않으면 비판과 견제를 해야 시민단체로 살아남을 수 있다. 오랜 시민운동의 경험에서 나오는 정책공조가 아니라면 한나라당과의 어설픈 연대는 ‘시민운동의 탈을 쓴 일시적인 정치운동’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곽승준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 sjkwak@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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