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동심이여,우주를 품어라

  • 입력 2006년 9월 15일 19시 37분


소녀는 비상(飛翔)을 꿈꿨다. 하늘을 날고 싶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비행학교 등록은 고사하고 비행기도 한번 탈 수 없었다. 머리 위를 나는 글라이더를 바라보며 부러워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비행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구해 읽었다. 민간 항공기는 물론 전투기와 수송기에 관한 책도 탐독했다. 부모는 종종 딸을 가까운 공항으로 데려갔다. 비행기의 이착륙 장면을 보여 주며 미안한 마음을 대신했다.

소녀는 16세 때 아르바이트에 나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3년간 모은 돈이 95만 원쯤 되자 비행기 조종법을 배우러 갔다. 이제 비행은 멀리 있는 꿈이 아니라 손안에 들어온 현실로 바뀌었다. 소녀는 힘과 자신을 얻었다. 다른 역경들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갔다. 학비가 모자라 2년제 지역대학에 들어갔지만 장학금을 받아 4년제 대학으로 편입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 공군 조종사 훈련학교로 직행한 최초의 미국 여성이 됐다. 이후 석사학위를 2개나 땄다.

소녀는 뒷날 ‘엄마 선장’으로 불린 아일린 콜린스 씨다. 콜린스 씨는 1991년 우주비행사로 선발된 이후 최초의 우주왕복선 여성 조종사, 최초의 여성 선장 기록을 이어갔다. 무엇보다 그는 컬럼비아호 폭발참사로 위기에 빠진 미국의 우주왕복선 계획을 정상궤도로 되돌려 놓았다. 2년 만의 공백을 깨고 2005년 디스커버리호의 성공적 발사와 귀환을 총지휘한 것이다.

“어릴 때부터 조종사와 우주비행사를 동경했다. 온갖 탐험가들을 우러러봤다. 어릴 때는 이 모든 것이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는 한낱 꿈에 불과했다. 그러나 꿈은 이루어졌다.” 콜린스 씨가 어린이들을 향해 하는 말이다.

17일은 한국 최초의 우주인을 선발하는 필기시험이 있는 날이다. 앞서 실시된 1차 기초체력평가에서 합격한 3176명의 ‘예비 우주인’이 응시한다. 체력평가 때는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노기업인에서부터 10대 후반의 대학생까지 각양각색의 남녀 지원자들이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이들의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는 참여 동기는 대체로 비슷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려는 첫걸음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듯하다.

어느 나라건 첫 번째 우주인으로 선발되면 개인적 명예를 넘어 역사적, 국민적 인물로 남게 된다. 2003년 중국의 첫 우주인이 된 양리웨이 중령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물론 한국의 첫 우주인은 사정이 좀 다르긴 하다. 남의 나라 우주선을 빌려 타고 국제우주정거장에 머물다 오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한바탕 이벤트에 그치고 말 위험이 크다. 첫 우주인의 명예를 살리기 위해 260억 원이 들어가는 우주인 선발과 훈련, 파견 그리고 사후관리의 전 과정을 세심하게 준비해야 한다.

체력평가 시험장에는 응시자들을 따라 나온 어린이들이 꽤 눈에 띄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뜀박질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잠시나마 우주비행사가 돼 우주를 날아가는 모습을 그려 보지 않았을까.

이번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밤하늘을 쳐다보길 권한다. 도시의 전깃불로 별을 제대로 볼 수는 없겠지만 저기 어딘가 한국의 통신위성인 무궁화5호가 지나가고 우주정거장도 날고 있다고 말해 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이 한국의 콜린스가 되는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이진 국제부 차장 lee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