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여성 최초’의 함정

  • 입력 2006년 9월 14일 20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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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최초’ 여자들은 주류 문화를 깬 개척자들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삶의 고단함과 역경을 이긴 성취에 존경심이 일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최초’를 달가워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력이 아닌 성(性)으로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한때 ‘여류(女流)’라는 말이 있었다. 주로 여자 소설가, 시인, 화가 앞에 붙었다. 예술가는 남자여야 하는데 여자가 나왔으니, 이는 별종(?)으로 묶어야 한다는 (남자들의) 발상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류’는 이제 잘 안 쓴다. 여자 예술가가 많아진 이유도 있지만 여성 스스로가 이 말을 싫어했다. ‘여자도 ∼일 수 있다’는 비하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여성 최초’를 내켜하지 않는 여자들도 그 말이 세상의 중심(남성사회)에 진입한 ‘주변인’을 강조하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흑인 최초’ ‘장애인 최초’는 있어도 ‘백인 최초’ ‘정상인 최초’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최초’를 없애려면 수가 많아지면 된다. 칼자루(인사권)를 쥐고 있는 남자들한테 떼(?)라도 쓰고 싶은 조급함이 들기도 하지만 이번 ‘전효숙 파동’을 보면 마냥 그럴 일도 아닌 것 같다.

이번 일은 한국사회 ‘여성 최초’ 담론이 2막으로 진입했음을 알린다. 여자가 어떤 자리에 ‘처음’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됐으며, 어떻게 해 낼 것인가를 검증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 후보자는 실망스럽다.

‘청와대 전화를 받고 사표를 썼다’는 그녀의 솔직함(?)은 무공해 심성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혹여 세상과의 소통에 미숙한 것은 아닌지 하는 프로페셔널리즘의 빈약을 보여 주는 것 같다. 한 법조인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자신의 법 해석이 사회 구성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법과 삶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자리”라며 “하물며 헌재 소장은 헌법 수호기관의 수장으로서 풍부하면서도 엄정한 법적 상상력이 있어야 하는데 전 후보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진정한 프로는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잘’하는 것으로 진화해 가는 것이다. 전 후보자는 법조계 내에서 승진할 때마다 여성 1호였지만 성 때문이 아니라 열심히 일한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조직 내 1호가 아닌 세상 밖 1호로 나선 그녀는 ‘열심히’에서 ‘잘’로의 업그레이드가 불안해 보였다.

‘여성 최초’를 위해 편법 위법 탈법을 감행한 청와대 남자들에게는 고마운(?) 생각이 없지 않지만 그들의 법적 무지와 정치적 무리수는 결국 전 후보자의 명예를 떨어뜨렸다.

게다가 ‘여성 최초’라는 영광의 수사를 ‘그러게 여자는 할 수 없다니까’ 같은 독(毒)으로 만들 소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모든 실력 있는 잠재 여성 1호들의 명예까지 떨어뜨렸다.

하긴 지금 중요한 것은 여자의 명예가 아니다. ‘헌재’라는 중요한 국가기구의 명예가 무너졌으니 이건 남녀 모두의 문제다. 설사 정치권의 담합으로 임명동의안이 통과된다 해도 헌재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회복하기 힘들게 됐다.

한국 사회는 아직 ‘여성 최초’도 시작 단계여서 사회적 학습이 적다.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전 후보 파동은 이제 일하는 여자들도 ‘자리’가 아닌 ‘명예’를 택할 수 있다는 다양함을 보여 줘야 할 시대가 왔음을 알린다.

허문명 교육생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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