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순원]남자의 여름은 여자보다 덥다

  • 입력 2006년 6월 8일 04시 07분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 이럴 때면 엄격한 아버지와 개방적인 딸은 옷차림을 두고 소소한 언쟁을 벌이곤 한다. 젊은 딸이 초미니스커트나 찢어진 청바지라도 입고 집을 나서려 하면 아버지는 “꼴이 그게 뭐냐”며 역정을 낸다. 여성들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혹은 패션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가 참 야속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 남성들도 비슷한 상황을 종종 겪는다. 필자에게 넥타이 차림을 힘겨워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 외근이 없던 어느 금요일에 가벼운 노타이 차림에 아내가 선물한 목걸이를 하고 출근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금요일 저녁에 바로 출발하는 가족과의 주말여행이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상사로부터 그는 ‘그게 뭐냐’는 핀잔을 듣고 말았다. 토요일이 아닌 엄연한 금요일이라는 이유였다. 결국 내 친구는 그 이후로 금요일에도 어김없이 남자들의 사계절 유니폼인 슈트를 집어 들어야 했고 캐주얼 의류는 따로 준비해야 했다.

복장에 크게 제한을 두지 않는 회사가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관습에 얽매여 있는 곳도 많은 듯하다. 조직에 속해 있는 개인 혼자서 그 틀을 깬다면 모난 돌로 취급받기도 한다.

하지만 창의성 창조성을 운운하는 작금에는 어느 정도의 융통성은 필요하지 않을까? 21세기엔 열심히 책상머리에 앉아 해결되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 않은가.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직원들은 고객을 만나지 않는 날은 재킷을 걸치는 일도 없다. 빌 게이츠가 슈트를 말끔하게 차려 입은 걸 본 기억도 없지 않은가.

우리는 그동안 누구나 그렇다고 생각하는 ‘원칙’에 순응해야만 했다. 조직의 다른 이와 다르지 않아야 했고, 조금의 일탈도 감히 꿈꾸지 말아야 했다. 이 때문에 개인의 변화를 꾀하려면 아직은 조직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몸이 편한, 그래서 머리도 함께 편한 옷차림을 일주일에 하루, 아니 한 달에 하루라도 허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한국 남자들에게 여름 나기는 힘겹다. 홍콩에서는 비즈니스맨들이 아예 재킷을 입지 않는다. 반팔 셔츠에 넥타이가 공식 비즈니스 복장이다. 올여름엔 제발 내 친구들이 태양열 흡수가 뛰어나다는 남색 슈트를 때때로 벗을 수 있으면 좋겠다.

정순원 ㈜보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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