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제균]황당한 이야기 Ⅱ

  • 입력 2006년 5월 2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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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생각에도 이렇게 큰 집의 주인이 된 건 의외였다.

집 살 돈이 모자라 다른 사람의 돈을 보태려 했지만 막판에 그가 등을 돌렸다. 내가 당하는 어려움에 마음이 쓰인 많은 이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 결국 이 집을 살 수 있었다.

집주인이 돼 보니 집의 외양과 구조는 물론 정원, 주변 경관까지 모두 마음에 안 들었다. 수십 년간 같은 사람이 살며 제 맘대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집을 완전히 뜯어고치겠다’는 생각으로 지하실부터 지붕, 정원과 담장까지 한꺼번에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고치려면 하나씩 고쳐야지 감당도 못 할 거면서 한꺼번에 손대느냐”는 얘기가 나왔다.

모르는 소리다. 이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집이 아니다. 내가 이 집을 잃는 한이 있어도 바꾸고야 말겠다. ‘입방아 찧는 자들은 이 집에 오래 산 주인과 한통속이다….’

#2

그가 이사 오는 걸 보고 기대를 많이 했다. 그 집은 이 동네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다. 그 집 주인이 대대로 이 동네의 좌장 역할을 하지 않았던가. 소탈한 모습도 끌렸다.

하지만 한동네에 같이 살아 보니 아니었다. 이사 오자마자 공사판을 벌여 동네를 시끄럽게 하더니 그 집과 수십 년 잘 지내온 이웃과 상의 없이 담장 공사를 시작해 이웃 싸움까지 벌였다.

한동네 사람으로 충고라도 할라치면 정색하고 따지고, 소송까지 걸었다. 급기야 인터넷에 ‘우리집 브리핑’이라는 이름의 코너를 열어 충고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더니 이제는 ‘동네 브리핑’이라는 이름의 인터넷 매체까지 만들었다. 정말 동네 시끄러워서 못살겠다.

#3

집 개조작업은 순탄치 않았다. 집주인 자신은 물론 일꾼들도 서툴렀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실력보다는 맘이 통하는지를 중시해 일꾼을 골랐기 때문에 초보자가 대부분이었다.

설계대로 했다가 아귀가 맞지 않아 뜯어고치기 일쑤였다.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방수 처리를 잘못해 비가 새곤 했다. 동네에서는 “좋은 집 다 망친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집 주인은 ‘후대에 이 집에 살 사람이 알아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하지만 그는 너무 집 고치는 데만 다 걸었다. 갖고 있던 돈이 모두 바닥났다. 그 큰 집을 유지하기가 버거웠다.

슬며시 마음 한구석에 불안이 깃들기 시작했다. ‘집을 내놓는 건 좋지만 돈 많은 사람이 사서 내 모든 걸 바쳐 바꿔 놓은 이 집을 옛날처럼 되돌려 놓으면 어떡하나….’

고민으로 불면의 밤을 지새우던 중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다음 날 그는 인터넷에 “우리 동네 집값에 거품이 끼었다”는 말을 퍼뜨렸다. 집값을 떨어뜨리면 부자들이 그 집을 탐내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좌장 격인 그의 이런 행동에 동네 사람들은 황당해했다. 하지만 인터넷에 달린 댓글에는 “자기 집값에 거품이 끼었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 못 믿겠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뤘다.

그가 집 고치는 데만 다 걸지 않고 부지런히 밖에 나가 돈을 벌고, 동네사람들과도 잘 지냈다면 오늘의 처지가 됐을까. 무엇보다 그는 자기 집을 진정으로 아끼는 주인이었던 적이 있을까.

박제균 정치부 차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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