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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5월 24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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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네바 한국 대표부에서 만난 직원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침에는 햇볕이 쨍쨍했는데….”
23일에는 날씨가 활짝 갰다. 그러나 조문소가 마련된 유엔 유럽본부 대회의장 로비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과 조화(弔花)가 놓인 테이블에서 사람들은 아쉬움을 글로 남겼다.
많은 이가 고인을 “닥터 리(Dr. Lee·이 박사)”로 불렀다. 총회에 참석한 리비아 대표단의 한 인사는 “항상 따뜻하게 사람들을 대하던 닥터 리의 모습이 생생하다”며 애도를 표했다.
국제기구의 수장을 공식 직함 대신 ‘닥터 리’로 부르는 데서 그들이 고인에게서 느끼는 인간적인 친밀감을 읽을 수 있었다. 20년 넘게 지구촌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세계인의 건강을 위해 헌신해 온 고인의 족적을 짚어 보면 ‘닥터’라는 이름만큼 더 적절한 게 어디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인은 최근 인류가 직면한 새로운 질병, 조류 인플루엔자(AI)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지인들은 전한다. 이번 WHO 총회에선 AI의 확산을 막기 위한 전 세계적 협력 체제를 갖추는 데 주력할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 고인은 지난주 주요국 대표단과 연일 오찬과 만찬을 할 정도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그러다 21일 중국 대표단과 오찬을 하던 중 쓰러졌다.
가족과 지인들은 “당신 몸이 어떤지는 모르고…”라며 한탄했다. 고인은 일주일 전부터 두통을 호소해 왔다고 한다. 세계인의 건강을 지키느라 정작 자신의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는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유엔 산하 최대 국제기구의 수장이기 전에 남다른 인류애를 가진 의사로서 존경을 받았기에 그를 아는 세계 지도자들도 진심으로 슬퍼했다. ‘한국’과 ‘한국인’이라는 브랜드를 다시 보게 만든 고인의 빈자리는 한국으로서도 큰 상실이다.
회의장 로비에 놓인 사진 속에서 고인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표정으로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런 웃음을 이어갈 제2, 제3의 ‘닥터 리’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제네바에서
금동근 파리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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