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용우]‘용기 있는 고백’이 정치쇼 안 되려면

  • 입력 2006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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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를 못 내는 한이 있더라도 비리는 용납하지 않겠다.”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얄팍한 정치적 술수가 아니다.”

“국회의원 20, 30명이 날아가더라도 흔들림 없이 나가겠다.”

12일 한나라당이 김덕룡(金德龍), 박성범(朴成範) 의원의 공천헌금 수수 의혹에 대해 조사 결과를 발표한 직후 박근혜(朴槿惠) 대표를 비롯해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들이 쏟아낸 말들이다.

한나라당은 다음 날 검찰에 두 의원의 사건에 대해 곧바로 수사를 의뢰했다.

한나라당의 결단에 많은 국민이 박수를 보냈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몰매를 무릅쓰고 비리를 밝히겠다는 용기를 보여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한나라당의 용기 있는 ‘고백’의 아름다움은 상당히 퇴색한 듯하다. 한나라당이 검찰에 제출한 수사의뢰서는 사건 개요만 달랑 담은 A4용지 2쪽 분량이었다. 검찰은 여러 차례 한나라당에 증거 자료를 제출해 달라고 했지만 한나라당은 24일에야 양주 등 일부 증거만 내놓았다.

검찰에 소환된 관련자들도 당초 한나라당의 조사 때와 상당히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진실을 가려야 할 검찰로서는 이들의 달라진 발언을 밝히기 위해 한나라당의 자체 조사 자료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검찰의 요청이 거듭되자 “서면으로 기록해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치는 말로 한다고 하지만 정치와 관련된 수사까지 ‘말의 잔치’가 될 수는 없다. 한나라당이 수사를 의뢰하면서 자체 조사 내용을 기록해 두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나라당은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자료와 증거를 이미 검찰에 다 제출했다”며 “관료 조직도 아니고 정당에서 구구절절 무슨 보고서를 작성하느냐”고 반문한다. 또 “검찰이 능력이 없어 제대로 혐의를 입증할 자신이 없으니까 야당에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나라당은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에게 이 사건을 발표했다. 국회의원 의석이 125석이나 되는 제1야당이 현역 의원의 공천 비리를 고백하면서 조사 자료가 없다고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만일 그렇다면 이는 말 그대로 ‘정치적 쇼’가 된다. 한나라당의 ‘아름다운 고백’이 진실이었다면 지금이라도 검찰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조용우 사회부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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