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717>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3월 17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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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3년 전 한왕이 이끄는 제후군 56만에게 팽성을 빼앗기면서 함께 잃을 뻔한 뒤로 패왕은 언제나 우(虞) 미인을 싸움터에 데리고 다녔다. 한군데 멈추어 싸울 때는 가까운 성읍에 옮겨 지키게 했고, 움직이며 싸울 때는 군중(軍中)에 두고 함께 움직이며 시중들게 하였다. 특히 광무산에서 물러나면서부터는 아예 패왕의 군막 곁에 몇 사람의 시중과 함께 따로 한 군막을 썼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패왕이 한군과 대치하며 따로 진채를 유지할 수 있을 때나 가능했다. 진채를 버리고 의지가지없이 쫓기면서 우 미인을 데리고 다닐 수는 없고, 당장은 그녀를 보호해 한군의 두꺼운 포위를 벗어나는 것조차 어려웠다. 따라서 이제 더는 그녀를 데려갈 수 없음을 깨달은 패왕은 그날 밤 나름대로 우 미인과 이별의 의식을 치르려 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 어떤 예감에 이끌렸던 것인지 우 미인은 단장까지 하고 기다리다가 패왕의 군막으로 불리어 왔다. 우 미인을 보자 말없이 술 한 잔을 더 들이켠 패왕이 비감(悲感)으로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춤을 추라. 내 오늘밤 취하도록 마시면서 그대의 춤을 보고 보리라.”

그 말에 우 미인이 별빛 같은 눈길을 들어 그윽이 패왕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잠깐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춤추기 시작했다.

초나라 춤[초무]은 남방 특유의 격렬한 정서를 솔직하면서도 관능적인 표정과 동작으로 풀어낸 것이라고 한다. 초나라 노래[楚歌]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우면서도 애절하게 호소하는 듯한 데가 있어 당시 널리 사랑받은 듯하다. 한왕 유방에게도 척(戚) 미인이라는 초나라 여인이 있었는데, 한왕 스스로 초나라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그녀에게 초나라 춤을 추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 미인이 춤추는 것을 본 패왕의 시중들이 굵은 촛불을 몇 개 더 가져다 방안을 밝혔다. 거기다가 화사하게 단장한 우 미인이 비단 옷자락을 날리면서 춤을 추니 무겁고 어둑하던 군막 안이 일시에 환한 봄날을 만난 듯하였다. 패왕이 마치 눈시울에 그런 우 미인을 담아가려는 듯 술기운이 어린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다. 방안에 있던 시중들은 물론 급한 일로 패왕의 군막을 들렀던 장수들까지도 한쪽으로 물러서서 우 미인의 춤을 구경했다.

춤은 갈수록 애조 띤 고혹(蠱惑)으로 군막 안을 채우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금방 타오를 듯한 눈길로 우 미인의 춤을 보고 있던 패왕이 갑자기 보검을 쓸어안으며 읊조리기 시작했다.

힘은 산을 뽑을 수 있음이여, 기개는 세상을 덮었어라.(力拔山兮氣蓋世)

때가 이롭지 못함이여, 추(추=오추마)마저 닫지 않는구나.(時不利兮추不逝)

추(추) 닫지 않음이여, 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추不逝兮可奈何)

우(虞)여, 우(虞)여, 너를 어찌할 것인가.(虞兮虞兮奈若何)

마치 크게 상처 입은 호랑이가 깊은 동굴 속에서 울부짖는 것 같았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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