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수진]악취 풍기는 ‘막말 정치’

  • 입력 2006년 2월 25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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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국회엔 정치인들이 생산해 낸 ‘배설물’로 가득했다.

한나라당 전여옥(田麗玉) 의원이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에 대해 ‘치매든 노인’이란 표현을 했다는 한 인터넷 매체의 보도가 발단이었다.

전 의원이 22일 대전에서 열린 한나라당 당원교육 행사에서 “현대 같은 기업 돈 5000억 원을 김정일(金正日) 계좌에 넣어 준 뒤 김정일이 공항에서 껴안아 주니까 DJ가 치매든 노인처럼 얼어서 있다가 합의한 게 6·15선언”이라고 말했다는 보도였다.

논란이 일자 전 의원은 “그런 말을 한 일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다른 정당들이 가만두지 않았다. 민주당은 논평에서 “젊어서도 치매가 든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전 의원을 공격했다. 민주노동당 대변인 논평은 “전 의원에게 비례대표 의원직을 준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배설물을 치우지 않으면 박 대표는 ‘여의도 개똥녀’가 될지 모른다”고 했다.

평소 독설로 유명한 전 의원이 불신을 자초한 측면도 있지만 공격자의 수준도 결코 높지 않았다. 정치공세의 소재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열린우리당은 이회창(李會昌) 전 한나라당 총재가 23일 DJ의 방북 계획을 비판한 것과 전 의원을 연결시켜 비난했다. “‘악의 꽃’의 대명사인 전 의원을 흉내 내는 것을 보면 치매에 걸린 사람은 이 전 총재다.”

여야의 독설 공방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홧김의 폭언도 아니고, 공식 논평에서 이번처럼 저질스러운 표현이 난무했던 적은 드물다.

공격을 해도 격조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우리 정치에 그런 사례가 없던 것도 아니다. 박희태(朴熺太) 국회부의장이 1988년 12월부터 4년여 간 여당 대변인을 지낼 때 발표했던 기지 넘치는 논평들은 아직도 정가에 회자된다. 대학생들의 민정당사 기습 점거를 “(대학생들이) 당을 방문했다”고 표현하는 식이었다. 그가 역대 최장수 정당 대변인 기록을 남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박 부의장은 24일 기자에게 “정치인은 국민이 정치를 재미있는 것으로 여기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정치판에 기지와 해학이 있어야 국민이 정치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건 동료 후배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조수진 정치부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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