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진경]인생은 불공평하다

  • 입력 2006년 2월 21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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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을 둔 엄마들의 화제는 단연 자녀가 배정된 학교의 대학진학률이다. 웬만한 양복 한 벌 값이나 되는 비싼 교복 값 타령도 잠시, 학부모들은 자녀가 다니게 될 학교 얘기에 열을 올린다.

이때 아들의 학교가 남녀공학인 엄마들의 한숨 소리가 가장 크다. 공부 잘하는 여학생 때문에 아들이 내신에서 불리할 것이 뻔하다며 걱정이다. 같은 이유로 딸을 둔 엄마들은 남녀공학을 바란다. 똑똑한 여자 아이들과 경쟁하기 힘든데 남자 아이들은 좀 만만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아이들은 성적이야 어떻든 간에 남자 아이들은 여학생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남녀공학을 선호하고 여자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지내기 편한 여학교를 좋아한다(이 대목에서 아들 녀석은 예쁜 여자애들은 남녀공학을 원한다고 우겼다!).

얼마 전 동네 소아과 의사들은 멀쩡한 아이들에게 성장이 늦다는 진단서를 발급하느라 맘고생을 했다고 한다. 올해 초등학교에 보내야 하는 2000년 1, 2월생 아이를 둔 엄마들이 자녀의 취학을 유예하려면 진단서가 필요하다며 떼를 썼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밀레니엄 베이비를 낳으려고 출산 시기를 늦추려 애썼던 엄마가 많다. 그런데 이제는 그 자녀가 먼저 태어난 또래들에 비해 학교생활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객관적 근거로 의사의 진단서를 요구했고 소아과 의사들은 단골 환자의 청을 외면할 수 없어 내키지 않지만 진단서를 발부한 것이다.

최근 해당 학교로부터 자녀의 취학 유예 ‘합격’ 소식을 들은 한 맞벌이 엄마는 “웬만하면 유예 결정이 난다지만 그래도 떨어질까봐 몹시 걱정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업 주부처럼 아이의 공부 뒷바라지도 잘해주지 못할 텐데 설 영근 일곱 살에 학교에 다니려면 여러 가지로 불리하잖아요.”

그러나 밀레니엄 바로 직전에 태어난 12월생들도 어차피 생일이 최대 10개월 차이가 나는 아이들과 공부한다. 취학을 유예한 아이들이 내년에 입학한다면 정상적으로 입학한 학생들과는 14개월까지 차이가 난다.

지난주까지 본보에 연재된 ‘책 읽는 대한민국-자녀교육길잡이 20선’은 자녀교육을 장기적으로 봐야 하고 윤똑똑이 같은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취학을 유예한 아이들이 초기에는 학교에 잘 적응했으나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물론 미국의 한 중학교에서 지난가을 학급을 남학생반 여학생반 남녀공학반으로 나눴더니 남녀공학반의 시험 성적이 가장 낮았다는 보도도 있다.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뒤지는 걸 부끄럽게 생각해 아예 경쟁을 포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학교 측의 분석이다.

그러나 어차피 사회에 나가면 남자들끼리만 살 수는 없다. 또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하고만 경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도 자녀가 경쟁에서 불리하다고 생각된다면 빌 게이츠가 수년 전 캘리포니아의 한 고등학교에서 했다는 인생충고 한 가지를 되새겨 보라고 권하고 싶다. 하릴없는 시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원래 공평하지 못하다. 그런 현실에 대해 불평할 생각일랑 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김진경 교육생활부 차장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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