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강금실의 ‘보라색 숄’

  • 입력 2006년 1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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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는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인 것 같다고 전여옥 전 한나라당 대변인은 말했다. 그럼 ‘왕의 여자’는? 아무래도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인 듯하다. 이번엔 서울시장 선거에 못 내보내 여권(與圈) 전체가 안달이니까 말이다. 오죽하면 당내 민주화 운동 세력의 간판 격인 김근태 의원마저 “안 되면 (주위에서) 당신과 함께 강물에 뛰어들라고 한다”며 다그쳤을까.

강 전 장관은 아직 확답을 않고 있다고 한다. 기자들이 물어도 특유의 정겨운 목소리로 “몰라요, 몰라요…” 하고 만다는 것이다. 모른다니, 참 절묘한 대답이다. 딱 부러지게 가부(可否)를 말해 주면 좋으련만 그저 “모른다”고 하니, 애가 탈 노릇 아닌가. 구애(求愛)부터 이처럼 극적이고 로맨틱하니, 출마한다면 가히 감성정치의 만개(滿開)를 볼 수 있을 듯하다.

강 전 장관이 서울시장감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법무부 장관으로서의 그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검찰의 수사권 독립과 조직 혁신에 일조를 했다”는 평이 있는가 하면 “검찰 조직을 흔들었으며 ‘혁신’으로 비친 것도 실은 이미지에 불과했다”는 평도 있다. 그를 제대로 평가하기엔 1년 5개월의 재임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지적이 있지만, 반대로 “적당한 때 그만둠으로써 신비감이 커져 오히려 득이 됐다”는 얘기도 있다. 장관 재임 10개월째였던 2003년 12월 경실련이 발표한 장관별 능력평가에서 그의 순위는 7위였다.

어떤 경우에도 그를 보는 시선에서 ‘이미지’라는 요소를 떼어내기는 어렵다. 언젠가 한 언론인은 그를 가리켜 “명석함과 유능함, 리더십, 강인함, 변호사 출신다운 언변, 호감을 주는 인상과 감각 있는 차림새…, 이 모든 것들이 그가 선거정치에 경쟁력이 있는 후보임을 말해 준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강금실, 매혹의 카리스마·2004년 이가서)

검사 몇 사람에게 “강금실 하면 떠오르는 게 뭐냐”고 물었더니 놀랍게도 “보라색 숄과 보라색 스타킹”이라고 답한 사람이 많았다. 그의 패션 감각은 “도시적인 세련됨과 절제된 당당함이 있다”는 평을 들을 정도지만 왜 숄과 스타킹일까. 그것도 보라색을….

색(色)으로 치면 일종의 대비효과다. 검은색과 접해 있는 흰색이 더 희게 보이듯, 머리 좋고 똑똑한 수재(秀才)가 걸친 보라색 숄이기에 그 관능적 색감이 더 도드라져 보였을 것이다. 보라색은, 늘 춤추고 싶어 한다는 ‘보헤미안’으로서의 그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린다.

그러나 열거된 이런 이미지의 실체(實體)에 대해서 대중은 알 길이 없다. 매체나 입소문, 아니면 드물게 한두 차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머릿속에 형성된 몇 조각의 인상(印象)을 자신의 기호에 맞게 재구성해서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언론학자 볼딩의 말대로 이미지란 역시 ‘내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 곧 나의 주관적 지식’일 터이다.

이미지와 그 사람의 능력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강 전 장관이 만약 서울시장이 된다면 직업공무원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나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겪은 사람보다 일을 잘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혹독한 검증과 구체적 성과로써 얘기할 수 있을 뿐이다. 보라색 캐시미어 숄이 감싸고 있는 그의 어깨 위에 1000만 서울 시민이 안심하고 저마다의 삶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여권이 그에게 목매다는 것은 역시 여론조사 때문이다. 차기 서울시장 선호도 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니, 어떻게든 내세우고 싶은 것이다. 20%대의 지지율에 허덕이고 있는 여당으로선 이보다 좋은 구원투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1위도 대부분 ‘강금실 효과’ 덕일 터이니, 결국 여당은 실체 없는 이미지에 매달리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접근이 과연 옳은 것일까. 명색이 집권당인데 어느새 이념도 정책도 팽개치고, 여론조사와 이를 떠받치고 있는 한 보헤미안의 이미지에 당의 사활(死活)을 걸 만큼 쇠락한 것인가. 이 정권의 386과 노사모들은 집권 초 “우리는 노란 목도리를 매고 한강을 건넜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그들이 희망과 개혁의 상징으로 삼았다던 ‘노란 목도리’도, 놀고 싶고 춤추고 싶어 하는 보헤미안의 보라색 숄 앞에서 마냥 초라해진 것인가.

이재호 수석논설위원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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