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인문학 장학생

  • 입력 2006년 1월 16일 0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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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최고경영자 중에는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많다. 미국 1000대 기업 최고경영자 가운데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거나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갖고 있는 사람은 3분의 1 정도다. 포천지(誌)는 미국 최고경영자의 76%가 대학 시절 인문학 전공자라는 통계를 내놓았다. 한국 기업에도 인문계 출신 임원 수가 늘고 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기업체 임원 가운데 8%에 머물렀던 인문계열 출신이 지난해 12.2%로 증가했다.

▷서양에서 인문학은 ‘휴머니티(Humanity)’로 불린다.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소비자의 기호와 심리 파악이 기업 성공의 열쇠로 떠오르면서 인문학적 소양이 깊은 경영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흔히 역사의 전환기에 인문학의 가치가 더 높아진다고 한다.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갈 때의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고 있으면 디지털의 신(新)시대가 어떻게 전개될지 내다보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사람들이 시류에 따라 인문학을 푸대접하거나 치켜세웠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선조들이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본 것은 문학 역사 철학, 즉 ‘문사철(文史哲)’을 전공 필수로 하고 시 서예 그림, 즉 ‘시서화(詩書畵)’를 교양 필수로 갖춘 사람이었다. 문사철은 이성을 닦는 훈련이고 시서화는 감성을 위한 훈련이라는 점에서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인격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최고의 인재상이다. 문사철이 바로 인문학 아닌가.

▷‘줄기세포 사기극’이나 정치권의 저급하고 치졸한 ‘막말 정치’ ‘거짓말 정치’도 인간의 근본, 배움의 기본에 소홀했던 데 따른 부메랑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시가 인문학 전공 박사과정 학생 300명을 ‘인문학 장학생’으로 선발한다고 한다. 인문학이 ‘위기’의 단계를 넘어 ‘공백’으로 치닫는 마당이라 때늦은 감이 있지만 국내 인문학을 위한 한 줄기 빛이 됐으면 한다. 각계가 지금부터라도 벽돌 한 장씩 쌓는 마음으로 인문학 복원에 나섰으면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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