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41>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2월 17일 03시 01분


코멘트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것은 또 무슨 소리요? 누가 주군을 떨게 하고, 세상을 뒤덮을 공을 세웠다는 것이오?”

“그대 스스로 아시지 못하는 듯하니, 신이 대왕의 공로와 용략(勇略)을 하나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처음 그대가 한중(漢中)에서 진창(陳倉)으로 빠져나와 삼진(三秦)을 차례로 우려 뺀 공이나 함곡관을 나와 다섯 왕을 사로잡고 항복 받은 일만 해도 세상을 놀라게 하기에 넉넉했습니다. 어떤 이는 그 공이 무모한 팽성 공략과 이어진 수수(휴水)가의 참패로 지워졌다 하나, 그래도 남는 것이 있습니다. 그대가 흩어진 군사를 모아 경현(京縣)과 삭현(索縣) 사이에서 항왕의 날카로운 기세를 꺾고 낙양 서쪽으로 초나라 군사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 공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그 뒤 그대는 서하(西河)를 건너가서 한 싸움으로 위왕(魏王) 표(豹)를 사로잡고, 다시 대(代)나라로 밀고 들어가 그 상국(相國) 하열(夏說)을 잡아 죽였습니다. 정형(井형)으로 들어가서는 배수(背水) 일진(一陣)으로 조나라 20만 대군을 쳐부수었으며, 성안군을 목 베고 조왕 헐(歇)을 사로잡았습니다. 연나라를 위압하여 항복 받았으며, 역하에서 제나라 대군을 깨뜨리고 전해(田解)와 화무상(華無傷)을 잡아 죽였습니다.

임치를 떨어뜨린 뒤 남쪽으로 내려가 항왕이 보낸 대군을 쳐부수었고, 동쪽 유수(유水)가로 가서는 초나라의 맹장 용저(龍且)를 목 베었습니다. 그런 다음 이제 서쪽을 향해 한왕에게 승리를 아뢰고 있으니, 이는 이른바 ‘공로는 천하에 둘도 없고 지략은 불세출이다’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대는 주군을 떨게 할 위엄을 지녔으며, 상을 받을 수 없는 공을 세웠습니다. 그대는 초나라로 돌아가려 해도 초나라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고, 한나라로 돌아가더라도 한나라 사람들이 떨며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와 같이 감당할 수 없는 공로와 위엄을 지니고 그대가 갈 수 있는 곳이 어디겠습니까? 남의 신하로 있으면서 주군을 떨게 할 만한 위엄이 있고, 그 이름은 천하가 우러를 만큼 드높아졌으니, 그래서 나는 그런 그대를 위태롭게 여기는 것입니다.”

괴철이 그렇게 말을 마치자 마침내는 한신도 깊이 헤아리고 따져보는 얼굴이 되었다. 한참을 말없이 앉았다가 문득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 참으로 귀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제 선생께서는 잠시 돌아가 쉬시지요. 과인도 이 일에 관해 곰곰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한신의 마음이 흔들린 것도 그때 잠깐뿐이었던 듯했다. 패왕의 사자로 온 무섭이 떠나가고 며칠이 지나도록 한신은 괴철을 부르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괴철이 다시 제왕 한신을 찾아보고 간곡하게 말했다.

“남의 좋은 꾀를 잘 들으면 일의 성패를 미리 살펴볼 수 있고, 헤아림이 좋으면 존망(存亡)의 기미를 알 수 있다 했습니다(청자사지후야 계자존망지기야·廳者事之侯也 計者存亡之機也). 듣기를 잘못하고 헤아림이 틀렸는데도 오래 평안히 지낼 수 있는 이는 드뭅니다. 남의 말을 잘 분별하여 판단을 그르치지 않으면 자잘한 말로는 어지럽게 만들 수가 없고, 헤아림이 앞뒤를 잃지 않으면 교묘한 말재주로는 헝클지 못하는 법입니다.”

글 이문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