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정은]야당엔 쌀쌀 여당엔 친절한 李총리

  • 입력 2005년 10월 27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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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청학련 사건 때 박정희 정권은 어떻게 했습니까?”(열린우리당 임종인·林鍾仁 의원)

“400여 명이 1년간 징역을 살았고 일부는 사형선고도 받았고….”(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

“유신시대 때 국민이 헌법을 고치자고 하면 징역 3년씩 보냈지요?”(임 의원)

“예, 긴급조치 해제만 요구해도 감옥에 갔습니다.”(이 총리)

25일 국회 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임 의원은 이 총리를 상대로 1, 2차 인혁당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 박종철 씨 고문치사 사건, 권인숙 씨 성고문 사건 등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따져 봐야 한다는 것이 질의의 취지였다.

이 총리의 답변은 친절했다. 임 의원에 앞서 질의를 한 한나라당 이방호(李方鎬) 의원에게 “나는 정책 답변을 하러 나온 사람이다. (그 외의 질문에는) 답할 가치를 못 느낀다”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것과는 달랐다.

이 총리는 제2차 인혁당 사건을 이야기하다 “(감옥) 앞방에 있던 경기여고 교사는 수업하다가 갑자기 붙잡혀 왔는데 결국 사형당했다”고 회고했고, 자신도 ‘살아 나온 것만도 다행’일 정도로 고문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10여 분간 계속된 임 의원의 질의는 통일 외교 안보라는 대정부질문 주제에서 벗어나 박정희(朴正熙) 정권 및 군부독재 시절의 반인권, 반민주 상황을 늘어놓는 식으로 흘러갔다. 그 시절 경찰이 여성의 스커트 길이를 재고 장발 단속을 했다는 내용까지 언급됐다.

이런 질의에 맞장구치는 이 총리의 답변 태도는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정책에 대한 질문을 하라”며 훈계하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그는 국가정체성 문제와 관련한 야당 의원의 질의에는 “1997년에 끝난 이야기”, “아직까지 그런 논의를 계속하는 것은 국가나 의회의 품위에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답변할 대상과 내용을 가리는 총리의 차별적 태도, 핵심 주제를 벗어나 총리에게 말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듯한 여당 의원의 모습….

야당의 일방적 정치 공세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 총리와 여당 의원의 이런 문답 또한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이정은 정치부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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