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용우]DJ정권 ‘올바르지 못한 인사’의 대가

  • 입력 2005년 10월 11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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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통치권 보존 차원에서 관행적으로 도청했을 뿐이다.”

국가정보원의 불법 감청(도청)을 주도한 혐의로 8일 구속된 김은성(金銀星) 전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이 최근 한 말이다.

김 전 차장은 김영삼(金泳三) 정권 시절 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잘나가던’ 간부였다. 핵심 부서인 기획조정실에서 단장급(2급) 간부직을 맡았다. 그러나 그는 빚보증을 잘못 서 많은 빚을 지게 되는 바람에 ‘목돈’이 필요하자 퇴직금을 받고 안기부를 그만뒀다고 한다.

그는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들어서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1999년 대공정책실장에 발탁됐고 이듬해 국내담당 차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퇴직했던 인물이 불과 2년 만에 국정원의 2인자가 된 것이다.

당시 그의 ‘화려한 복귀’에 대해서 말이 많았다. 국정원 직원들조차 “국정원을 개혁한다면서 옛 안기부의 핵심 요직에 있던 사람을 다시 중용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국정원과 정치권 안팎에선 이 같은 ‘파격 인사’의 배경에 정권 핵심 실세들이 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그가 ‘특정 지역’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나돌았다.

이에 대해 당시 DJ 정권 관계자들은 “수십 년간 특정 지역에 편중된 인사를 바로잡기 위해 그동안 소외됐던 지역의 인사를 기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도청 수사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는 김 전 차장의 행태는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해 주고 있다.

김 전 차장은 국정원의 도청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고, 그가 재임 시절 도청한 정보를 갖고 정권 실세들과 ‘뒷거래’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의 구속으로 DJ 정권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다. 능력과 됨됨이보다 출신 지역과 실세들에 대한 ‘충성’을 앞세웠던 인사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김 전 차장은 검찰에서 “대통령의 올바른 판단을 위해 도청을 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 ‘올바르지 못한 인사’를 했음을 웅변하고 있다.

조용우 사회부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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