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63>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9월 1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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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전해가 문루 위에서 내려다보니 성 밖은 어느새 한군의 창검과 깃발로 두껍게 에워싸여 있었다. 도성인 임치로 가는 동문 쪽이 그 모양이라면 다른 성문은 가보지 않아도 알 만했다. 전해(田解)가 당해도 너무 어이없이 당한 데 망연해 하고 있는데 문루 아래에서 자신을 찾는 외침이 들렸다.

“전해는 어디 있느냐? 어서 나와 내 말을 들어라!”

“내가 제나라 대장군 전해이다. 무슨 일로 나를 찾느냐?”

“나는 한나라 대장군으로서 지금은 잠시 조나라 상국을 맡고 있는 한신이다. 우리 대왕의 명을 받들어 너희 제나라를 거두려 왔다. 어서 성문을 열고 우리를 맞아들여라.”

앞서 외친 한나라 장수가 그렇게 전해의 말을 받았다. 전해는 그때 이미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짐작이 갔으나 그 또한 화무상처럼 믿을 수가 없어 되물었다.

“내가 듣기로 우리 군왕께서는 한왕에게 항복하여 한나라와 함께 항우를 치기로 했다 하였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군사를 내어 우리 진채를 몰래 들이치고 성을 빼앗으려 드느냐? 그럼 임치에 와 있다는 한왕의 사자는 미끼에 지나지 않고, 그가 한 말은 간교한 속임수였을 뿐이란 말이냐?”

“제왕이 우리 대왕께 항복한 일을 네가 이미 알고 있다면 무얼 더 따지고 뻗대는 것이냐? 마땅히 성과 군사를 우리에게 바쳐 너희 군왕의 뜻을 받들어야 하거늘 어찌 이리 미련을 떠느냐? 너도 여기 이 화무상 장군처럼 항복하여 우리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천하 평정의 공업을 이루어 보지 않겠느냐?”

한신이 이번에는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전해를 달랬다. 그러나 전해는 화무상과 달랐다. 그래도 제나라 왕가의 종성인 전씨(田氏)라고 고분고분 한신이 바라는 대로 항복하지 않았다. 전해가 먼저 화무상을 크게 꾸짖은 뒤에 다시 이를 갈며 한신에게 소리쳤다.

“우리 대왕이 어리석어 너희 임금 유방의 속임수에 걸려든 것 같다만, 나는 너희 시커먼 속셈을 안 이상 결코 성과 백성들을 내놓을 수 없다. 성벽을 베개 삼고 죽을지언정 너희같이 간교한 무리에게 어찌 항복하겠느냐? 이제라도 고이 군사를 돌린다면 나도 뒤쫓기를 그만두고 사람을 임치로 보내 우리 대왕께 항복한 참뜻을 물어볼 것이다. 그러나 힘으로 성을 빼앗고자 한다면 성안의 10만 군민과 더불어 죽기로 싸워 지난번 성양(城陽)에서 항우에게 보여준 매운맛을 너희에게도 보여주겠다.”

그러자 한신이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잘라 말했다.

“너희가 정녕 권하는 술은 마시지 않고 벌주로 바꾸어 마실 작정이구나. 성이 깨어지는 날 내 솜씨가 독하다고 원망하지는 마라!”

그리고는 한바탕 불같은 공격을 퍼부은 뒤에 군사를 성벽에서 물려 세웠다.

그날 밤 관영과 조참이 한신을 찾아보고 걱정했다.

“역성(歷城)의 성벽이 높고 두꺼운 데다 전해 또한 만만치 않은 장수라 실로 걱정입니다. 오늘 아침의 공격만 해도 우리가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훨씬 많습니다.”

그러나 한신은 별로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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