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권효]혁신도시 건설, 지방은 들러리인가

  • 입력 2005년 8월 9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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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노상강도인 프로크루스테스가 나그네를 자신의 집으로 잡아와 쇠침대에 눕힌 뒤 침대보다 짧으면 다리를 잡아 늘이고 길면 잘라 버렸다는 내용이다. 그는 결국 자신이 저질렀던 수법과 똑같은 방법으로 살해됐다.

요즘 정부가 이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고 지방자치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혁신도시와 공공기관 이전에 관해 큰 틀을 제시했으면 세부 사항은 지방에 맡겨야죠. 지방의 실정은 외면한 채 잡다한 규정까지 강요하는 것은 참여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지방분권을 스스로 뭉개는 것 아닙니까.”

경북도는 8일 “정부가 혁신도시 건설과 공공기관 이전에 대해 획일적 기준을 강요하다시피 하는 것은 독재적 발상”이라며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경북도는 혁신도시와 관련한 정부의 방침은 지방의 실정과 동떨어진 데다 지방분권과 자치정신에도 어긋난다며 경남도, 강원도 등과 연대해 독자적인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내놓은 10대 국정과제 가운데 절반가량이 지방분권과 관련이 있다. 지방분권이란 중앙이 갖고 있는 권한을 지방에 나눠 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공공기관 이전은 지방분권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정책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혁신도시는 어디에 어떻게 건설하고 공공기관은 개별 이전하지 말고 일괄 이전하라”는 등 구체적인 지침까지 내려 보내 일선 자치단체의 불만을 사고 있는 것이다.

광역자치단체의 혁신분권 부서들은 ‘지방은 들러리’라거나 ‘광역단체장은 정부정책의 총알받이’라며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경북도의 한 국장급 간부는 “정부가 지방을 살린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지방을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한다”며 “지방에 결정권을 주지 않으면서 무슨 분권정책이냐”고 꼬집었다.

윤성식(尹聖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은 “지방의 능력을 믿고 권한을 맡기는 것이 분권”이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데도 정부가 지방자치단체를 믿지 못해 획일적인 기준으로 지방을 재단하려고 한다면 비극적 운명을 자초한 프로크루스테스와 무엇이 다를까.

이권효 사회부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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