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72>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6월 1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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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이쪽에서 새로 얻고 보탤 수가 없어도, 맞서고 있는 저쪽에서 덜고 빼앗을 수만 있다면, 이쪽에서 새로 얻고 보태는 것이나 다름없을 수도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마음 내키시는 대로 사람을 욕보이고 나무라시기 때문에 청렴하고 절개 있는 선비들을 얻지 못하듯이, 항왕에게도 우리가 쓰기에 따라서는 대왕에 못지않은 단처(短處)가 있습니다. 그걸 파고들어 항왕의 사람들이 줄어들고 떠나가게 할 수 있다면, 대왕께서 좋은 선비들을 새로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말을 듣고서야 한왕도 비로소 진평이 뜻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진평에게 물었다. 진평도 더는 뜸들이지 않고 물음에 답했다.

“항왕이 믿고 의지할 만한 강직한 신하(骨경之臣)는 범 아부(亞父)와 종리매(鍾離昧) 용저(龍且) 주은(周殷)등 몇 사람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왕께서는 황금 수만 근(斤)을 푸시어 이간책을 쓰시고(行反間) 그들 군신 사이를 떼어놓아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십시오. 항왕은 사람됨이 남을 시기하고 의심하는 데다 참소하는 말을 잘 믿으니, 머지않아 안에서 저희끼리 죽이고 죽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때 우리 한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들이치면 반드시 초나라를 쳐부술 수가 있습니다.”

“항량이 죽은 뒤로 패왕은 범증을 아비처럼 따르고 있소. 실로 그를 일러 버금아비(亞父)라 하는 것도 말치레만이 아니오. 그런데 다른 사람이라면 또 몰라도 그들 사이를 황금으로 갈로 놓을 수 있겠소?”

“항왕의 진심이 아니라 그의 시기와 의심이 남의 말에 넘어가 범증을 멀리하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히 항왕이 우리 반간계(反間計)에 넘어가지 않으면 또 다른 독수(毒手)를 써야겠지요.”

진평이 표정 없는 얼굴로 그렇게 받자 마침내 한왕도 마음을 정했다.

“좋소. 그리해 봅시다. 모든 걸 진 호군(護軍)께 맡기겠소.”

그리고는 황금 4만 근을 진평에게 내주게 하고 그 마음대로 쓰게 했다. 정말로 그 뒤 한왕은 그 황금이 들고나는 것에 관해서는 한번도 묻지 않았다.

진평은 전에 패왕 항우를 섬긴 적이 있어 초나라 군중(軍中)에 연줄이 많이 남아 있었다. 또 한나라 이졸(吏卒)들 중에는 초나라 사람들이 많아 초나라 군중에 첩자로 넣기에 좋았다. 진평은 그들 가운데 똑똑하고 말 잘하는 백여 명을 골라 그들이 함부로 한왕을 저버리고 초군에게 넘어갈 수 없도록 꼼꼼하게 손을 썼다. 형양성 안에 누군가 인질이 될 만한 사람을 남기는 한편, 서로를 이리저리 엮어 모두가 모두를 감시하는 형국이 되게 했다. 진평은 그 모든 일이 뜻대로 짜여졌다 싶자 한왕에게서 받은 황금을 풀어 그들에게 듬뿍 나누어주며 말했다.

“너희들은 이제 초나라 군중으로 들어가 황금을 뿌려 저들의 마음을 산 뒤 내가 시킨 대로 헛소문을 퍼뜨려라. 항왕이 그걸 믿고 그들 장수들을 멀리하면, 그 모두가 너희들의 공인 줄 알고 크게 상을 주겠다. 살아 돌아오는 대로 지금 가져간 만큼의 황금을 더 내릴 것이요, 뒷날 우리 대왕께서 천하를 차지하는 날에는 모두 장상(將相)의 줄에 서게 해 그 공에 보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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