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희경]복지부 장관의 ‘이벤트성 행사’

  • 입력 2005년 3월 24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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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처 가운데 이런 행사는 우리가 대한민국 최초예요. 앞서 가는 거죠.”

김근태(金槿泰) 보건복지부 장관이 각계 대표 106명을 불러 23일 경기 과천시의 한 호텔에서 연 ‘국민과의 약속’ 행사를 두고 복지부의 한 간부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 복지부 공무원들은 이들 ‘국민 대표’ 앞에서 ‘청탁을 받지 않겠다’ 등의 ‘청렴 서약’을 발표했다. 이어 몇몇 참석자들의 건의를 들은 뒤 김 장관은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고맙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만들자”고 인사말을 했다.

이날 ‘국민과의 약속’ 행사는 정치인의 지역구 보고대회를 연상시켰다. 우선 행정 기관이 정당처럼 ‘국민 대표’를 불러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부터가 생경하기 짝이 없다. 더욱이 청렴은 선언의 대상이 아니라 공무원의 의무 아닌가.

김 장관의 이상한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다.

김 장관은 독도 분쟁과 관련해 자신의 홈페이지에 ‘고종 황제를 비롯해 (을사늑약) 당시 대신들은 모두 싸우다 죽거나 자결했어야 했다’는 글을 올렸다. 조선조 마지막 황손인 이석(본명 이해석·李海錫) 전주대 교수는 23일 라디오 방송에서 “병조판서도 아니고 이조판서도 아닌 복지부 장관이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장관은 홈페이지에 왜 그런 글을 올리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24일 “장관임과 동시에 국무위원이고 정치인이다. 이런 상황에서 침묵을 지키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답변했다. 김 장관의 주장대로라면 정치인 출신 장관은 국정 현안에 대해 정치적 해석과 발언을 쏟아 내도 된다는 얘기다.

앞서 김 장관은 한 여배우의 자살을 열악한 노동 조건에 항거해 분신자살한 전태일의 죽음과 비교한 글을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여배우 자살부터 독도 분쟁까지 온갖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하고 행사를 벌이는 것이 잠재적 대권 주자로서의 입지 넓히기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러나 복지부에는 국민연금제도 개선 등 긴급한 현안이 산적해 있다.

지금 국민이 정치인 김근태를 원하는 걸까. 현재 자신의 일부터 챙기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임을 김 장관은 유념했으면 싶다.

김희경 교육생활부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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