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04>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3월 13일 18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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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듣자하니 지금 초나라와 제나라는 사신이 오락가락하며 한창 화평을 논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패왕은 제나라와 화평이 이뤄진 뒤라야 이곳으로 대군을 낼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다소 여유가 있으니, 대장군의 말대로 해 보시지요. 일이 다급해지면 중도에 군사를 불러들이는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장량이 나서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한왕도 비로소 마음을 정했다. 결연한 낯빛으로 장량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았소. 그런데 조나라를 잘 아는 장수라면 누가 좋겠소?”

“전에 그곳에서 승상 노릇을 했고, 나중에는 상산왕(常山王)이 되어 그 땅 대부분을 다스려 본 장이보다 조나라를 더 잘 아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는 오랫동안 진여(陳餘)와 고락을 함께해 온 터라 진여의 사람됨이나 재주까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장이가 간다면 대장군이 진여를 잡는 데도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장이에게 군사 3만을 주어 조나라로 보내도록 하십시오.”

장량이 다시 그렇게 대답했다. 한왕도 그 말을 옳게 여겨 그날로 장이를 불러 말했다.

“성안군 진여는 속이 좁고 변덕이 심한데다 대(代)와 조(趙) 두 나라를 걸터타고 있어 진작부터 과인의 걱정거리였소. 이제 대장군 한신은 위나라를 정벌한 여세를 몰아 대나라와 조나라까지 평정하려 하니, 상산왕은 3만 군사를 이끌고 급히 평양으로 가서 대장군을 돕도록 하시오. 그 두 나라라면 상산왕보다 밝게 아는 이가 없으니, 그 두 나라를 치려는 대장군에게는 상산왕보다 더 반가운 빈객(賓客)도 없을 것이오. 대장군을 잘 이끌어 과인에게서 동북의 근심을 덜어주고, 아울러 진여를 죽여 상산왕의 묵은 원한도 씻도록 하시오.”

조나라를 치고 진여를 죽이는 일이라면 장이 또한 감히 스스로 나서서 청하지는 못했으나 간절히 바라던 바(不敢請 固所願)였다. 한왕의 당부가 끝나기 무섭게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받았다.

“신을 보내 주신다면 대왕의 뜻을 받들어 반드시 하열(何說)과 진여를 목 베고 동북의 걱정거리를 없이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그날로 3만 군사를 받아 형양을 떠났다.

밤낮 없이 장졸을 휘몰아 천리 가까운 길을 달려간 장이는 열흘도 안 돼 평양에 이르렀다. 기다리던 한신은 군사들과 함께 장이가 온 걸 보고 진심으로 반겼다. 군례를 마치기 바쁘게 장이를 자신의 군막으로 청해 물었다.

“나는 먼저 대(代)나라를 쳐서 등뒤를 깨끗이 한 후에 조나라를 칠 생각이오. 상산왕께서는 여러 해 성안군 진여와 고락을 함께하셨으니 진여뿐만 아니라 그가 손발처럼 부리는 사람들도 잘 알 것이오. 지금 진여의 상국(相國)으로 대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하열은 어떤 사람이오?”

“주인에게 충실하기가 개보다 더한 자이나, 남의 윗사람 노릇 하기에는 모자란 데가 많을 것입니다.”

“장재(將材)는 어떠하오?”

그러자 갑자기 장이의 눈길에 노기가 서렸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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