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2년 계부살해 김보은씨 구속

  • 입력 2005년 1월 18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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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에 진관이가… 난 누구에게서도 사랑받을 수 없는 여자인데….”

법정에 선 스물한 살 앳된 여대생의 통곡에 방청석은 눈물바다가 됐다. 전 국민을 경악하게 한 ‘김보은 사건’의 애절한 단면이었다.

1992년 1월 19일, 무용학도인 김보은 씨와 그의 남자친구 김진관 씨가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죽은 이는 김보은 씨의 의붓아버지. 그러나 진짜 피해자는 그가 아니었다.

김 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의붓아버지로부터 첫 성폭행을 당했다. “일곱 살 때 재혼한 엄마를 따라 ‘그 인간’과 함께 살면서 새 아빠가 생겼다는 생각에 기뻤죠.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에….” (1992년 7월 6일 항소심 공판)

검찰 직원인 의붓아버지는 그 후 13년간 김 씨의 몸을 유린했고 가족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김 씨는 “내가 반항하면 그가 온 가족을 죽일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김진관 씨는 연인의 ‘과거’를 알고 분노했다. “보은이의 두 눈은 늘 슬픔에 젖어 있었어요. 괴로움에 몸을 떠는 보은이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1992년 8월 24일 항소심 공판)

그들은 의붓아버지를 찾아가 식칼로 찔러 죽인다. 1심에서 칼을 휘두른 김진관 씨에게 징역 7년, 동행한 김보은 씨에게는 징역 4년이 선고됐다.

여론은 들끓었다. 성폭행 가해자를 21년 만에 죽인 ‘김부남 사건’의 충격이 반년 전 일이었다. “이들의 인생을 망친 게 누군데 죗값을 묻다니….” 여성계는 목 놓아 울었다.

결국 2심에서 김보은 씨는 집행유예, 김진관 씨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비참한 생활을 강요당한 점이 인정되지만 사적인 복수를 함으로써 법질서를 무너뜨렸다”고 이유를 밝혔다.

김부남, 김보은 사건은 이듬해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이끌어 냈다. 특별법은 친족 간 성폭행을 제3자가 고소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제2의 김보은’을 막고자 했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딸들의 고통’은 줄지 않고 있다.

“그 사람만 없으면 행복해질 줄 알았어요.” 김보은 씨는 자신의 진술대로 행복을 찾았을까? 기원할 뿐 묻지는 말자. 호기심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먼저니까.

김준석 기자 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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