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61>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1월 18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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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대장군은 어찌 되었는지 알아보았는가?”

“대장군께서는 수수(휴水)가에 내몰린 한 갈래 우리 군사를 북돋워 초나라 군사들을 매섭게 받아치셨다 합니다. 이에 주춤한 초나라 군사들이 달아나자 떼를 얽어 수수를 건넜다고 하는데, 그때 함께 묻어간 우리 군사가 1만 명은 넘을 거라는 소문입니다.”

“제후와 왕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살아남아 영벽에서 함께 싸웠던 왕들 중에 위왕(魏王) 표(豹)와 한왕(韓王) 신(信)은 각기 몇백 명씩 거느리고 수수를 건넜다는 소문입니다. 그러나 새왕(塞王) 사마흔, 적왕(翟王) 동예와 상산왕(常山王) 장이는 모두 그 간 곳을 모릅니다.”

하지만 상산왕 장이가 어찌 되었는지는 더 궁금해 할 필요가 없었다. 한 시진도 안 돼 100여 기를 이끌고 여택의 진채로 찾아든 까닭이었다.

그 사이 다른 장졸들도 소문을 듣고 몰려와 어느새 한왕이 거느린 군사는 3만 가깝게 늘어났다. 비록 싸움에 져 쫓겨 온 군사들이지만, 한왕이 살아있고 적잖은 장수들이 남아있어 그런지 제법 사기도 살아났다. 그러나 한번 활에 다쳐본 새는 굽은 나뭇가지만 보아도 겁을 먹는다던가, 한왕은 해가 높이 솟을수록 하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게 불안해졌다.

“어서 배를 모으고 뗏목을 엮어 수수를 건너도록 하라. 탕현(탕縣)으로 건너가면 그곳 망산(邙山)과 탕산 사이에는 작은 군사로 큰 적을 맞기 좋은 땅이 있다.”

그렇게 군사들을 재촉해 탕현으로 갔다. 탕현은 하읍과 수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형국이지만 한왕이 밝게 아는 땅이었다. 여러 해 전 진나라에 죄를 짓고 무리 100여 명과 더불어 몇 년 숨어 산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망산과 탕산도 그때 한왕이 숨어 살던 때와는 달랐다. 몇백 명 거느리고 초적(草賊)질을 할 땅은 되어도 3만 가까운 대군이 머물기에는 마땅치 못했다. 거기다가 위왕 표가 패군 500명을 이끌고 찾아와 급한 소식을 전했다.

“신이 한군데 여울목을 골라 수수를 건너다보니 멀리 동쪽 언덕에 초나라 군사들이 크게 배를 모아두고 있었습니다. 곧 항왕이 대군을 이끌고 수수를 건널 작정인 듯했습니다.”

수수만 건너면 탕현까지는 한나절 길도 되지 않는다. 한왕은 그 말을 듣자 벌써 오추마에 높이 앉은 패왕이 두 눈을 번들거리며 자신을 뒤쫓고 있는 것 같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런데 다시 날아든 제후들의 소식이 한왕을 더욱 겁먹게 했다.

“새왕 사마흔과 적왕 동예가 스스로 패왕을 찾아가 항복하고 죄를 빌었다 합니다. 어찌된 셈인지 이번에는 패왕도 그들을 죽이지 않고 이전처럼 왕으로 삼으며 다른 제후들의 항복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왕을 따라왔던 제후와 왕들 중에 아직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한결같이 마음이 흔들려 대왕과 우리 한나라를 바라보는 눈길이 전과 같지 않습니다.”

그 소식에 한왕은 더 견뎌내지 못했다. 탕군에 이른 지 하루도 안 돼 다시 군사를 서쪽으로 물렸다.

“서쪽으로 100여 리 더 군사를 물려라. 우현(虞縣)에서 다시 한번 잔군(殘軍)을 수습하여 세력을 키운 뒤에 적을 되받아치자!”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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