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60>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1월 17일 18시 12분


코멘트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대왕께서 이미 거느리고 있는 장수들 가운데는 대장군 한신이 있습니다. 한신에게 따로 큰일을 맡기면 천하 한 모퉁이를 넉넉히 감당해낼 것입니다.”

“대장군까지?”

한왕이 얼른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그렇게 장량에게 되물었다. 장량이 흔들림 없는 어조로 받았다.

“그렇습니다. 만약 대왕께서 땅을 떼어주고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그 세 사람뿐입니다. 경포와 팽월과 한신, 셋을 얻어야만 강성한 항왕(項王)을 쳐부술 수 있습니다.”

뒷날로 보면 놀랍도록 밝은 장량의 눈이었다. 한왕도 그런 장량의 말을 이내 알아들었다. 머릿속에 그 말을 새겨두려는 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탄식처럼 말했다.

“그런데 그 셋 중에 아무도 과인 곁에 남아있지 않으니…. 더욱이 대장군은 몸이라도 무사히 빼냈는지….”

그 말에 장량도 숙연해져 얼른 대꾸하지 못했다. 그 때 주여후 여택(呂澤)이 달려 나와 한왕에게 군례를 올렸다. 여택은 여후(呂后)의 오라버니로 사사롭게는 한왕에게 손위 처남이 되었으나 그때는 이미 군신(君臣)의 예가 자리 잡혀 신하로서 한왕을 공손하게 모셨다.

원래 여택이 하읍에 거느리고 있던 군사는 1만 명을 크게 넘지 않았다. 하지만 군세가 작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지 않아 오히려 그때까지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거기다가 그 며칠 여기저기서 수십 명, 수백 명씩 몰려든 한군(漢軍)과 제후군 패잔병이 더해져 한왕이 하읍에 이르렀을 때는 벌써 2만 가까이로 불어났다.

영벽의 싸움 뒤 내리 이틀을 몇 십 기만 거느리고 쫓겨 다니던 한왕은 비로소 한 시름을 놓았다. 여택의 진채에 들어 지치고 고단한 몸을 쉬게 하면서, 따라온 장졸들을 인근에 풀어 패군을 수습하는 한편 흩어진 장수들의 소식을 알아보게 하였다. 하룻밤이 지나자 다시 1만 여명의 군사가 붇고, 흩어져 달아난 장수들의 소식도 차례로 들어왔다.

“추(鄒) 로(魯) 땅에서 물러나다 호릉(胡陵)에서 항왕의 정병에게 패한 번쾌 장군은 외황(外黃)에 이르러서야 약간의 패군을 수습하였다 합니다. 지금은 군사 몇 천과 더불어 양(梁)땅에서 머물러 항왕의 승리에 흔들리는 민심을 다독이며 세력을 키우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먼저 그런 번쾌의 소식을 들은 한왕이 다시 물었다.

“소성(蕭城)을 지키던 관영과 조참은 어찌 되었다더냐?”

“두 분 모두 각기 한 갈래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몸을 빼신 것은 틀림없으나 그 뒤의 소식은 더 듣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멀지 않은 곳에서 팽성을 지켜보며 자신들이 장차 해야 할 바를 가늠하고 있을 것입니다.”

정탐을 나갔던 군사들로부터 소식을 모아온 장수가 한왕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했다.

“주발은 어찌 되었다던가?”

“곡우(曲遇)를 소란케 하던 초나라 잔병(殘兵)들은 모두 쓸어버렸으나 그 뒷소식은 역시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팽성의 실함을 듣고 대왕을 도우러 이리로 달려오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제야 한왕은 영벽 싸움에서 흩어진 장수들을 물었다.

글 이문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