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패 司正’ 열에 아홉은 풀려나서야

  • 입력 2005년 1월 14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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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범죄에 대한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비판이 어제오늘 나온 것은 아니다. 본보가 컴퓨터 활용 보도(CAR) 기법으로 12년 동안 정치인, 고위 공무원, 공기업 간부들의 판결과 집행 내용을 분석한 결과 ‘유전경죄(有錢輕罪)’의 현실이 실증적으로 확인됐다.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을 받은 정치인 및 고위 공직자들은 수사를 받고 구속될 때만 요란하다. 재판에 들어가면 보석, 집행유예 등으로 빠져나가고 실형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 권력자들은 실형이 확정되더라도 온갖 연줄을 동원해 형 집행정지나 사면으로 풀려나기 일쑤다. 분석 대상자의 10%만 실형을 만기(滿期) 복역했거나 현재 복역 중이라고 하니 90%는 중간에 다 빠져나간 것이다. 이래서야 ‘사정(司正)’이 부끄럽지 않은가.

컴퓨터 분석 결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되는 거액 수뢰자일수록 일반 뇌물죄보다 집행유예 비율이 높았다. 선거법 위반사범의 벌금은 면허 취소를 받는 음주운전자의 평균 벌금액보다 적었다. 사법 정의가 물구나무섰다는 탄식 외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이러다 보니 권력과 돈을 가진 피고인이 일반 형사피고인에 비해 훨씬 가벼운 처벌을 받는 현실을 은연중 당연시하는 풍조마저 우리 사회에 번지고 있다.

아버지가 대통령일 때 청탁과 함께 1억5000만 원을 받은 김홍일 의원 사건 항소심에서 재판장은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것을 되새기기 바란다”고 훈계했다. 옳은 말이다. 사법부가 부정한 돈을 받은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에게 엄정한 판결을 통해 공짜가 없다는 교훈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부패 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지나친 관용이 사회 전반에 부패불감증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 사법부는 권력형 비리에 대해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사법부는 전국 법원에 부패 범죄에 대해 통일된 양형(量刑) 기준을 제시해 일관성 있는 선고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특히 형이 확정된 부패 사범들에 대해 대통령이 사면권을 남용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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